폴 크루그먼 “트럼프발 무역전쟁, 함께 가난해지는 군비경쟁과 같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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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전쟁의 여파로 세계 교역량은 1950년대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크루그먼, 27일 제주포럼에서 특별 강연 #“무역전쟁시 관세율 40%대 급등, 세계 교역량 3분2로 급감” #“수출주도형 한국같은 나라가 가장 취약…아시아내 교역 늘려야” #“1950년대 교역 수준으로 후퇴, 결국 미 근로자도 고통받아" #“할리데이비슨 생산기지 해외 이전은 폭풍의 시작일 뿐” #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석학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주도하는 보호무역주의 정책의 대척점에 서 있는, 대표적인 자유무역주의 학자다. 지난 3월 초 뉴욕타임스(NYT)에 ‘누구에게도 도움 안 되는 무역 전쟁’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해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 비판했다.

제13회 제주 포럼에 참석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27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글로벌 무역전쟁과 동북아 안보환경'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 20180627

제13회 제주 포럼에 참석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27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글로벌 무역전쟁과 동북아 안보환경'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 20180627

크루그먼 교수는 27일 무역 전쟁의 본격적인 도래를 경고했다. 그는 이날 제13차 제주포럼 ‘글로벌 무역 전쟁무역 전쟁과 동북아 안보환경’ 주제 특별 강연에서 “정말 놀랍고 특이한 시대”라며 “역사적으로 무역체제 후퇴의 움직임이 있긴 했지만 늘 회복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크루그먼 교수가 그린 무역 전쟁의 모습은 ‘보복의 악순환’이다. 그는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과 유럽연합(EU) 등은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미국은 또다시 재 보복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이 다음 달 6일부터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 일부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히자 중국은 ‘양적ㆍ질적 동등 대응’의 강경 대응 방침을 표명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 같은 무역 전쟁무역 전쟁을 ‘과거로의 퇴보’라고 진단하고 “국가별로 관세율이 40%대 수준까지 치솟을 수 있고, 이 경우 현재 세계 교역량의 3분의 2 정도가 감소해 50년대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6년 현재 전 세계 평균 관세율은 4.8% 수준이다. 이런 관세율이 무역 전쟁무역 전쟁으로 인해 10배 가까이 오르면 교역량도 급감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는 “중국산 휴대전화에는 한국,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 기술이 들어가 있고, 그만큼 기술과 개방에 기반을 둔 복합적 가치사슬이 형성되고 있다”며 “이런 개방 무역 체제가 무역 전쟁무역 전쟁으로 일시에 후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무역 전쟁무역 전쟁이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지만, 군비경쟁과 같은 악영향을 끼친다는 측면에서 말 그대로 전쟁”이라며 “서로 자원을 쓸데없이 낭비하면서 함께 가난해지는 상황을 만든다는 면에서 군비경쟁과 같다”라고 설명했다.

무역 전쟁의 방아쇠를 잡아당긴 미 행정부를 크루그먼 교수는 거듭 비판했다. 그는 “무역 전쟁무역 전쟁을 이끄는 대표적인 주자는  미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캐나다산 철강과 알루미늄에도 관세를 매겼는데, 이건 정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 근로자가 트럼프의 정책으로 고통받을 것이란 우려도 내놨다. 크루그먼 교수는 “할리 데이비드슨이 유럽의 보복관세 때문에 생산 기지를 옮기겠다고 얘기했는데 이것은 폭풍의 시작”이라며 “미국 내 최대 700만명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함께 G2(주요 2개국) 지위에 있는 중국에 대해서도 “세계 경제에서 악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중국이 지위에 걸맞지 않게 여전히 지식재산권을 보호하지 않고, 선진국의 이익을 갉아먹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향후 트럼프가 보호무역 정책의 방향을 틀 가능성을 크루그먼 교수는 “없다”고 봤다. “미국의 무역정책에서 경제적 측면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오히려 경제적 불안감을 악용하는 측면이 있다”면서다.

한국과 관련해선 “무역 전쟁무역 전쟁에 가장 취약한 국가는 한국과 같이 수출 주도적인 경쟁 체제를 갖춘 국가들”이라며 “아시아 지역의 교역량을 늘려 버퍼(Bufferㆍ완충장치) 존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 나아가 아시아 지역 내 경제연대 필요성도 내비쳤다. 그는 “아시아도 EU를 모범 삼아 역내 무역체제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제주=하남 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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