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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역전승' 꿈꾸는 이동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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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화 이글스가 빙그레 이글스였던 시절, 1991년이었다. 그때 이글스는 장종훈.강석천.이정훈.이강돈.강정길 등 패기 있는 타자들을 주축으로 정규시즌에서 1위를 할 만큼 잘나갔다. 이기는 날이 많았다. 야간 경기가 끝나면 선수들이 하나 둘씩 모여 승리를 자축하는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다.

그때 장종훈.강석천 등 젊은 선수들은 대전 탄천의 '27번 포장마차'를 자주 찾았다. 당시 포장마차는 일렬로 늘어서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그들이 27번 포장마차를 자주 찾은 이유는 팀에서 등번호 27번을 달고 뛰던 그들의 '형님'이 단골이어서였다. 그들의 형님은 보스 기질이 강했던 오른손 투수, 이동석(42.현 화순고 감독.사진)이었다. 당시 이동석이 에이스는 아니었다. 선수로서 황혼기였다. 그는 마음씨가 너그러웠으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 정의감이 강했다. 그래서 젊은 선수들이 믿고 따랐다. 이동석은 그해를 마지막으로 빙그레를 떠났고, 쌍방울에서 2년을 더 뛴 뒤 93년 말 은퇴했다.

이동석이 누군가. 프로야구에서 통산 12승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88년 4월 17일 광주 해태전에서 선동열을 상대로 노히트노런(1-0승)을 기록한 투수로 기억되는 주인공이다.

이동석은 그날 단 한 개의 안타는 물론, 볼넷도 하나 없는 완벽한 경기를 펼쳤다. 수비진의 실책 두 개 탓에 국내 프로야구 최초의 퍼펙트게임을 놓쳤다.

그렇게 추억의 명승부를 남기고 유니폼을 벗었던 이동석이 사연 많은 감독이 돼 돌아왔다. 선수 18명의 작은 시골 팀 전남 화순고를 이끌고 제40회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를 찾았다. 인구 6만여 명, 국내 고교팀 가운데 유일하게 군(郡) 단위 팀인 화순고를 대통령배 4강까지 끌어올리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가 화순고 감독으로 부임한 지 2년 만이다. 2002년 3월 팀을 창단한 화순고는 2004년 미추홀기에서 준우승한 적은 있지만 중앙무대에서 4강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그는 선수로 뛰었던 군산상고 시절부터 대통령배와 인연을 맺었다. 군산상고 2학년이던 81년 제15회 대회 때 북일고를 5-3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28회 대회(94년) 때는 대전고 인스트럭터로서 대전고의 정상을 함께 맛봤다. 그리고 이번 대회, 그는 또 한번 대통령배를 통해 파란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현재 한 명이라도 다치면 경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의 선수단을 이끌어야 하는 어려움 외에 암투병 중인 형수를 돌봐야 하는 이중고가 있다.

그는 자신이 '역전의 명수'(군산상고의 별명)로 고교시절을 보내면서 쉽게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게 몸에 뱄다고 한다. 그리고 현역으로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던 자신의 야구인생을 다시 한번 '역전승'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한다. 그의 '인생 역전승'은 지금 진행형이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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