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사 강혁, 깜짝 MVP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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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MVP 강혁이 그물을 자르고 있다. [뉴시스]

"어허 그놈 참…."

1996년 8월 대학농구연맹전 2차 대회가 열린 잠실학생체육관. "강혁이 어떻게 됐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경희대 최부영 감독이 대답 대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강혁은 전날 경기에서 오른쪽 발목을 다쳤다. 의사는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강혁은 연세대와의 경기까지만 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최 감독은 이튿날 상태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하룻밤을 넘긴 강혁의 발은 퉁퉁 부어 농구화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강혁은 가위로 농구화를 잘라 억지로 발을 밀어넣고 테이프로 고정한 다음 "뛸 수 있다"며 최 감독을 찾아갔다. 최 감독이 "안 된다. 빨리 병원으로 가라"고 하자 강혁은 농구화를 벗어 내동댕이치며 대성통곡했다. 경희대는 결국 연세대에 졌고, 준우승에 그쳤다.

강혁은 뛰겠다는 의지와 승부욕으로 가득 찬 선수다. 상대가 누구든 위축되는 법이 없다. 삼성의 안준호 감독은 강혁에게 상대팀의 가장 중요한 선수를 막게 한다.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우지원.이병석.김동우 같은 일류 포워드들을 수비했다. 강혁은 안 감독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모비스와의 정규리그 경기에서 평균 9.3득점이었던 강혁은 챔피언 결정전 네 경기에서 평균 17.3득점.6.5어시스트의 맹활약으로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는 MVP가 됐다.

강혁은 "목이 멘다. 끝까지 믿어준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뒤에서 '열심히 하라'며 힘을 보태준 (서)장훈이 형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혁은 "MVP 욕심이 왜 없었겠나. 받고 싶었다. 욕심 때문에 4차전 초반에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강혁은 "삼성에서 잡는다면 남아 있고 싶다. 내 실력을 잘 알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액수(연봉)를 부를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 강혁은=▶1976년 9월 16일생▶1m88㎝.83㎏▶성산초등학교~오산중~삼일고~경희대▶1999년 삼성 입단(드래프트 5순위)▶2000~2001 시즌 우수후보선수상, 2003~2004.2004~2005.2005~2006 시즌 수비 5걸, 2004~2005 시즌 모범선수상▶연봉 2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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