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중에도 아이들 생각한 아내 … 그 꿈 전하는 인형 배달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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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성일 장금신아트워크 대표가 우체부 고마 인형을 안고 웃고 있다. [사진 컴패션]

박성일 장금신아트워크 대표가 우체부 고마 인형을 안고 웃고 있다. [사진 컴패션]

북극에 사는 곰 ‘고마’의 직업은 우체부다. 아이들의 잃어버린 인형을 집집마다 찾아다주는 게 고마의 일이다. 고마가 배달해준 인형 하나 하나는 아이들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된다.

수호랑·반다비 제작한 박성일 대표 #어린이들 보낸 그림대로 인형 제작 #9월에는 아프리카 꼬마들 찾아가

우체부 고마는 박성일(51) 장금신아트워크 대표가 만든 그의 분신 곰인형이다. 20년 넘게 인형 만드는 일을 해온 박 대표는 아이들에게 그런 인형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어릴 땐 친구가 돼 주고 어른이 돼서도 추억을 되새길 수 있게 하는 인형을 말이다.

지난 18일 박 대표를 서울 한남동 컴패션 사옥에서 만났다. 박 대표는 지난 평창올림픽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마스코트 수호랑·반다비 인형을 제작한 주역이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지난해 FIFA U-20 월드컵 마스코트 인형들도 그의 회사가 만든 작품이었다. 그렇게 쉴 틈 없이 달려왔지만, 본업과는 별개로 그가 매년 빠지지 않고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아이들이 보낸 그림 편지를 인형으로 구현해 선물하는 ‘나만의 인형’ 기부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장금신아트워크의 설립자이자 박 대표의 부인 장금신씨는 암 투병 중이었다. 장씨가 입원해 있던 국립암센터 8층 암병동 바로 윗층이 어린이병동이었다. “그동안 인형으로 먹고 살았으니까 나 병 다 낫고 우리 둘 다 60 넘으면 정말 필요한 아이들에게 인형 선물해주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 어린이병동의 아이들을 보며 나만의 인형 프로젝트를 제일 처음 제안한 건 장씨였다.

자신의 그림과 똑같이 만들어진 인형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아이. [사진 컴패션]

자신의 그림과 똑같이 만들어진 인형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아이. [사진 컴패션]

이후 암센터 어린이병동 학부모회를 통해 아이들의 ‘산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그림편지’를 받아 그 그림과 꼭 닮은 인형 40여 개를 만들었다. 박 대표는 “아내와 병실에 앉아 1년 내내 인형을 만들어 그해 크리스마스가 임박했을 때쯤 인형을 아이 부모님들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인형을 산타 할아버지가 준 거라 믿었다. 부부가 그걸 원했다.

“아이들이 정말 좋아한다”며 부모들이 병실에 들러 고마움을 전할 때마다 부부는 큰 행복감을 느꼈다. 앞으로도 꾸준히 아이들을 위한 인형을 만들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재작년 11월 장씨는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났다.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박 대표는 나만의 인형 프로젝트를 꿋꿋이 이어갔다. 이제 어린이병동의 아이들 뿐 아니라 지역아동센터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가끔 회사에 그림편지를 보내오는 아이들까지 모두 챙기고 있다. 박 대표는 “인형을 보낸 아동의 부모들에게는 ‘제가 아니라 우체부 고마가 주는 거라고 전해주세요’라고 당부한다”고 했다. 회사 직원들 모두 힘을 보태 지난해에만 300개가 넘는 인형이 주인을 만났다.

오는 9월 박 대표는 우체부 고마와 함께 탄자니아 북부에 있는 킬리만자로로 간다. 탄자니아는 박 대표가 올해부터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을 통해 후원하는 낸시(5)가 사는 곳이다. 박 대표는 지난해 6월 또 다른 후원 아동 굴리(11)에게 인형을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 그는 “아내와 사별한 뒤 5년 간 후원해 온 굴리에게 사진과 그림편지를 받았다. 사진 속 아이는 어느덧 훌쩍 커 있었고 왠지 그 모습에 눈물이 펑펑 났다. 이후 컴패션에 양해를 구해 굴리가 그린 인형을 보냈다”고 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고마 인형 500개를 현지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박 대표는 나이가 들어서도 ‘회사 한구석에서 인형 만들고 있는 사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 다음달 열리는 캐릭터 페어에서 박 대표는 우체부 고마를 소개하면서 인형으로 제작할 아이들의 그림을 받을 예정이다. 모두 선물용이다. 나만의 인형 프로젝트로 제작한 인형들은 앞으로도 판매용으로는 제작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했다. 그에게 ‘왜 그렇게까지 이 프로젝트를 하는 건지’ 물었다. “첫째는 아내와의 약속, 둘째는 내 또래 친구들이 취미로 골프나 등산을 좋아하듯 난 이 일이 좋고 이걸 할 때 제일 행복하기 때문이다”는 담백한 답이 돌아왔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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