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기 적시에 서울올림픽"|르몽드지 퐁텐 사장 특별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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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방한중인 「앙드레·퐁텐」 르몽드 사장과의 특별회견은 본사편집국에서 이루어졌다. 르 몽드 사장은 편집국 기자들의 직선에 의해 뽑혀 그 명성이 세계에 드높다.
특히 이 신문은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 논평과 분석을 가해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해 뫘다. 「퐁텐」사장도 11년 전 남북한을 차례로 방문,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을 단독 회견한 바 있는 한반도정세에 관한 세계적인 전문가다. 「퐁텐」사장과의 회견은 이번이 여섯 번째인데 다섯 번은 파리의 르몽드에서 여섯 번째는 본사에서 갖게되었다.
파리∼서울의 장시간 여행으로 매우 피곤한 표정인 그는 회견 휫 수를 상기시키자 껄껄 웃었다.
먼저 11년 전과 오늘의 인상이 같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서 이점부터 이야기를 풀기로 했다.
▲ 「앙드레·퐁텐」 =서울의 분위기가 크게 부드러워졌다. 거리에서 시민들이 미소짓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서울거리도 모두 바뀌었다.
11년 전에는 공사가 많아 소란스러웠으나 지금은 깨끗이 정비되어 한국의 급속한 변화를 느꼈다.
▲주섭일=기자들이 직선한 사장이니 신문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이 때문에 「퐁텐」사장은 우리 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귀하는 TV등 전파매체의 발달로 신문의 사양화를 염려한 적이 있는데….
▲「퐁텐」=우리는 지금 TV의 정보전달이 괄목할 만한 시대에 살고 있다. 신문은 전파 매체가 할 수 없는 완전하고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신문기사는 TV보다 더욱 깊이 성찰된 분석적인 것이라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가 말하는 것과는 달리 신문이 사양화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 예로 우리 르 드가 3년 전부터 부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한 점을 들 수 있다 (3년 전 르 몽드의 부수는 35만 부 정도였으나 지금은 53만 부 수준이다).
▲주=그것은 「퐁텐」 사장 취임 후 경영쇄신 때문이 아닌가.
▲「퐁텐」=허허…. 그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d 그때 르몽드의 부수가 떨어지고 광고수입이 악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신문이 TV때문에 사양길을 걷는다고 얘기했었다. 파산선고가 임박했다는 소문도 났다. 그런데 이를 거부하는 여론이 일어났고 르몽드의 새 경영진은 이 여론에 용기 백배, 경영쇄신을 단행할 수 있었다.
편집에 관해 말하면 당신도 자주 보았듯이 우리는 아침 일찍 사장실에서 편집간부회의를 연다. 이때 간부들이 자유롭게 토론과 협의를 하며 자연스럽게 제작방향이 결정된다.
나는 사장으로 1면 기사의 제목과 사설을 살펴보며, 그리고 가능한 한 시쇄를 읽는데 당신이 자주 와본 그대로다. 편집국장은 신문제작의 총책임자고 사장은 경영·관리·제작·대외관계를 총괄한다.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 최근에 르몽드가 몽파르나스 역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이 결정은 사장인 내가 내렸다.
▲주=서울올림픽은 몬트리올이후 12년만에 동서진영이 모두 모여 뜻깊다. 마치 동서장벽이 무너진 듯한 화해무드로 가득 찬 것 같다. 이를 서울올림픽현상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 「퐁텐」=서울 올림픽은 국제정세로 보아 정말 적시에 열리게 되었다.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의 철수, 베트남 군의 캄푸치아에서의 철수, 이란·이라크의 휴전, 프랑스 사회당 정부의 누벨칼레도니 문제해결, 서부사하라를 둘러싼 알제리와 모로코의 분쟁해소, 중소의 화해무드 등등 88년은 용의 해라고 말하듯이 세계 역사상 최고의 행운을 의미하는 좋은 해다. 88년은 모든 문제가 풀려 해결을 보는 한해인 것 같다.
▲주=그런데 북한은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는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퐁텐」=국제정세가 이러함에도 한반도에 긴장이 상존 하고 있는 이는 아나크로니즘(시대착오)이다. 때마침 김일성은 남북정상회담에 보다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김일성은 연로한 탓인지 세계를 사회주의와 제국주의 진영으로 분리해보는 「스탈린」시대의 심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북한은 소련과 중국이 서울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을 일종의 스캔들로 볼 수 있을 것이고, 또한 당신 나라와 같은 다양하고 복합된 사회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이 서울에서 올림픽이 개최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따라서 서울· 평양의 공동개최가 아닌 그들의 단순한 서울올림픽참가는 그들의 눈에도 어마어마한 실패로 비쳐지는 것이다.
▲주=서울올림픽에 대한 북한의 태도는 통일문제에도 연관되는 것 같다.
11년 전 서울과 평양을 방문한 후 귀하는 한반도 통일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렸다. 남북정상회담을 평양에서 갖자는 김일성의 주장은 노태우 대통령의 8· 15제의를 받아들인 회답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한반도통일의 비관적 전망을 계속 고수하는가.
▲ 「퐁텐」 =지난 11년 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다. 그래서 학문적인 연구가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소련은 동독이 서독과 활발하게 교류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이는 소련외교정책의 실패일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소련은 나머지 동구나라들인 체코나 헝가리를 지배하기 매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한반도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아마 김일성이 살아있는 한 소련은 북한에 대해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김일성이 권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의 개인숭배를 의미할 뿐이다. 모택동이 죽은 후 중국은 크게 흔들렸고, 「프랑코」사후의 스페인도 비슷한 현상을 보였다. 그런데 북한만이 유일하게 그들의 체제를 앞으로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김일성이 개혁과 개방의 시기를 더 늦춘다면 북한에 심각한 위기가 올 것이다. 나는 김정일이 그의 아버지와 같은 권위를 가질 수 있다고는 전혀 보지 않는다.
▲미=르몽드는 한반도정세에 관해 항상 높은 관심을 보여왔고 실제 당신도 김일성과 단독회견, 보도한 바 있다.
김일성이 최근 평양정상회담을 주장한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퐁텐」=김일성은 선행조건을 붙이지 않았는가.
▲주=주한미군 철수와 남북불가침 선언 등이 조건이다.
▲ 「퐁텐」=헤아리기 어려운 문제다. 아마도 북한은 지금까지 군사적인 통임의 길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중국과 소련의 기지를 받지 못했다. 반면 한국은 그 동안 외교분야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한국외교가 공산권에 문을 활짝 열어 이니셔티브를 잡게되었다.
▲주=르몽드는 오랫동안 한국의 정치체제에 비판적이었다. 11년 전 귀하의 기사를 보면 혹독하게 때렸다. 민주화 도상에 있는 오늘의 한국을 어떻게 보는가.
▲ 「퐁텐」 =서울에 도착한지 수일 밖에 안돼 논평하기가 이른 것 같다.
그러나 민주화의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인상이다. 그런데 11년 전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을 도처에서 보았다.
많은 기업주들이 노조의 요구에 골치를 썩이고 정부는 빈부의 격차를 걱정한다. 또한 민주선거에 의해 선출된 선량들의 국회도 있다. 나는 이 분위기가 프랑코」 사후의 스페인과 같다고 느낀다. 나는 절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너무나 독재적이었던 구체제에 대해 대단히 분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두가 민주적인 새 체제를 열망하고 있는 것 같다.
▲주=그러나 안으로는 좌우논쟁이 심각히 일어나고 있다. 이는 사회갈등의 반영이겠지만 이를 올림픽후의 불안요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 「퐁텐」=민주체제에서 좌우 파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우파는 사회를 있어 왔던 그대로 유지하기 바라나 좌파는 변화를 요구한다. 사실 인생은 변화의 연속이다.
인생의 한복판에서 좌우 파는 서로 견제하면서 존재한다. 훌륭한 민주체제는 좌우의 관계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서로 유지해 나가는데 있는 것이다. 나는 작년 6월 항쟁 때 학생들이 민주화에 기여한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 동시에 나는 오늘날 한국 학생들이 남한 체제를 북한체제보다 과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대담)=주섭일<편집위원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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