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계산법' 다른 한·일 4·22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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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돗토리현 사카이항 연안에서 대기 중이던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측량선 가이요(海洋)호와 메이요(明洋)호가 23일 도쿄항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카이항 AP=연합뉴스]

전투는 일단락됐다. 상대를 겨냥했던 포신(砲身)은 뒤쪽으로 물려졌다. 그러나 이게 끝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벌써 50년을 넘게 끌어온 전쟁이다(광복 후인 1952년 1월 18일 정부가 '인접 해양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으로 독도 주권을 공표하자 열흘 뒤 일본은 '한국의 독도 영유를 인정할 수 없다'는 외교문서를 보내왔다).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 수로 조사로 시작된 외교 갈등은 한.일 외무차관의 4.22 합의로 쉼표를 찍었다. 유명환 외교부 제1차관과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16시간30분간에 걸친 마라톤 회담 결과를 발표하며 "외교적 해결로 매듭짓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본 돗토리(鳥取)현 사카이(境) 외항에 대기하던 측량선 두 척은 23일 오전 8시 원래 출발지인 도쿄항으로 되돌아갔다.

◆ 원칙과 실리 주고받은 미봉책=한.일 차관 협의 전부터 양측에선 "EEZ 협상으로 피해갈 것 같다"는 말이 돌았다. 해양과학 조사라는 껍데기를 썼지만 이번 사태의 본질은 EEZ 분쟁이기 때문이다. 물론 EEZ 협상이 시작돼도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타결은 어렵다. 우리도 알고 일본도 안다. 그래서 4.22 합의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봉합일 뿐이다.

협상에서 끝까지 논란이 된 건 해저 지명 등록문제였다. 일본은 '등록 포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명 등록은 우리 권리"라고 버텼다. 결과는 한국 주장대로 됐다. 일본이 얻은 건 해석이다. 일본은 '한국이 6월에 등록 신청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반박하지 않았다. 속사정이 있다. 정부 관계자는 "내부 논의 결과 기술적으로 6월에 신청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 국제수로기구 해저 지명 소위원회의 옵서버 국가다. 발언권은 있지만 의결권은 없다. 반면 일본은 회원국이다. 당장 신청해도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원칙을, 일본이 실리를 택한 이유다.

일본의 해저 지형 조사는 6월 30일까지만 중단된다. 발표에서 '예정된 조사'라고 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6월 이후 다시 조사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EEZ 협상 재개라는 안전판을 마련했다. 협상 중 일본이 조사를 강행하면 국제 사회의 비판을 살 수 있다.

◆ 분쟁화 성공? 이미지 훼손?=청와대 측은 두 가지를 소득으로 꼽았다. 일본의 해저 지형 조사를 철회시켰고, 우리의 해저 지명 등재방침을 고수했다는 점이다. 청와대 당국자는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낸 협상 결과"라고 했다. 협상에 관여한 정부 소식통은 "이번 일로 동북아 영토 분쟁에 임하는 일본의 호전적인 이미지가 국제 사회에 각인돼 일본의 부담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반면 일본 측은 독도 문제를 국제분쟁화한 게 최대 성과라고 꼽았다. 시마네(島根)현의 스미다 노부요시(澄田信義) 지사는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지명) 문제의 해결이 불가피함을 거듭 국제적으로 인식시켰다"는 담화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독도를 둘러싼 진검 승부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EEZ 협상과 독도 영유권 문제 등에 대비해 국제법적인 논리를 강화하고 역사 문제를 전담 연구하는 동북아역사재단 등의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며 "긴 호흡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EEZ 협상을 앞두고 독도 영유권 문제 등에 대해 범정부적으로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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