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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세, 기술 유도 불지핀 '강골'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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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유도 대표팀 권성세(46)감독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두고 보지를 못하는 사람이다. 권위라든가 관례 같은 것도 소용없다. 반쯤 벗어진 머리를 굳이 가리려 하지 않고 아예 스포츠형으로 짧게 깎고 다니는 것만 봐도 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부산 아시안게임 직전 태릉선수촌에서 대표선수들의 처우를 개선하라며 집단 훈련거부를 주동해 관철시킨 사람이 그였다. 유도계에서 떨떠름하게 생각하던 재일동포 추성훈의 국가대표 발탁도 그에 의해 이뤄졌다.

대한유도회로서도 그런 그가 귀찮은 존재였다. 보성고-인하대 출신인 그는 보성고 감독 시절 "유도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대학 출신이 감독으로 있는 학교와 경기를 하면 지게 돼 있다. 이게 무슨 스포츠냐"고 공공연히 유도회를 비난하고 다녔다.

그런데 199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이 17년 만에 처음으로 금메달을 한개도 따지 못하자 유도회가 권감독에게 '항복'을 했다. 제자들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키워낸 많은 유도 전공 대학교수들을 제쳐놓고 일개 고등학교 감독인 그를 대표팀 감독으로 전격 발탁한 것이다.

당시 남자 국가대표 7명 중 4명이 보성고 출신으로 권감독의 제자였다. 정부경.장성호.최용신 등 선수들이 "권감독님과 같이 운동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유도회가 "말이 많아 밉지만 실력은 있지 않느냐"며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권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는다고 해서 상황이 그렇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총력을 기울여 육성했던 한국 엘리트 스포츠는 이미 사양길이었다. 특히 힘들고 큰 돈을 벌기도 어려운 격투기의 몰락은 빨랐다.

복싱이 그랬고, 레슬링도 예전같지 않았다. 유도계에서도 "전기영이나 김미정 같은 화려한 유도선수는 한국에서 다시 나오기 어렵다"는 얘기가 많았다.

그러나 권감독은 돌이키기 어려울 것 같았던 물줄기를 다시 돌리고 있다. "상대의 힘으로 상대를 이기는 것이 유도"라는 그의 지론대로 힘이 아니라 기술의 유도를 통해서다.

이번 오사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판승 행진을 벌이며 우승한 이원희 선수처럼 그의 제자들은 화려한 기술로 상대를 매트에 던지고 있다. 과거에 없던 현란한 기술이 속속 등장한다.

그래서 한국 유도는 현지에서 '수비에 치중하다가 기습 공격을 하는' 이전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상대를 압도하면서 재미있게 경기를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권성세식 유도'는 이번 대회에서 세개의 금메달을 따내면서 한국 유도의 재기 및 새로운 가능성을 세계에 알렸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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