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외고도 일반고로···외고 30년 전성시대 종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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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외고, 일반고 전환 신청 

지난해 11월 전국 외국어고등학교 학부모연합회 소속 학부모들이 외고 폐지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News1]

지난해 11월 전국 외국어고등학교 학부모연합회 소속 학부모들이 외고 폐지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News1]

지난 4일 부산국제외고가 부산시교육청에 '특목고 지정 해제 신청서'를 냈습니다. 내년도 신입생 모집부터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것이죠. 외고가 일반고로 바뀌는 건 2011년 중산외고(충북)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전문가들은 올 연말에 외고 입시 결과가 나오면 다른 외고에서도 ‘폐지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합니다. 1990년대 이후 '입시 명문'으로 통하던 외고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죠. 불과 몇 년 전까지도 독보적 위치를 점하던 외고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외고 폐지’가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지난달 18일입니다. 부산국제외고는 이날 학부모들에게 ‘일반고 전환’을 안내하는 가정통신문을 보냈습니다. 학교 측은 통신문에서 “2019학년도 신입생부터 단계적으로 일반계고로 전환해 운영하는 큰 방향을 설정하고, 학부모 총회를 열어 의견을 나누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계획대로면 내년의 경우 1학년은 일반고생, 2·3학년은 외고생으로 '한 지붕 두 학교' 체제가 되는 것이죠.

지난 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부산국제외고의 일반고 전환을 반대하는 글이 올라왔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지난 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부산국제외고의 일반고 전환을 반대하는 글이 올라왔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재학생과 학부모는 반발했습니다. 지난 1일엔 한 1학년생 학부모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국제외고의 일반고 전환을 재고해주십시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는 “입학한 지 몇 달 만에 일반고로 전환된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혼란스럽다”며 “밀어붙이기식의 교육정책은 가장 중요한 시기의 학생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이 글엔 4400여명이 지지 의사를 밝혔습니다.

 학교 측은 학부모들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 4일 '특목고 지정 해제 신청서'를 냈습니다. 사실상 ‘외고 폐지’ 수순에 들어간 것이죠. 시교육청은 특목고 운영위원회를 열어 지정 취소 여부를 결정한 후 청문 절차를 거쳐 교육부에 최종 승인을 요청할 예정입니다. 교육부 승인이 완료되면 내년 신입생부터는 일반고 학생들로 전환되는 것이죠.

 부산국제외고가 이 같은 결단을 내린 이유는 학생 수 감소로 학교 운영에 빨간 불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모집 경쟁률이 2014년 2대1에서 2015년(1.5), 2016년(1.1)으로 감소하더니 급기야 지난해엔 0.9대1로 미달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올해 외고 경쟁률이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죠. 일반고와 달리 외고는 학생 등록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정원 미달은 재정악화로 직결됩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지난해 서울서 외고 모집 첫 미달

특히 지난해는 입시명문인 서울외고가 부산국제외고와 함께 미달 사태를 겪었습니다. 250명 모집에 208명밖에 지원하지 않았죠. 서울에 있는 외고의 모집이 미달한 것은 외고가 특목고로 지정된 1992년 이후 처음이어서 큰 충격을 줬습니다. 미달까지는 아니지만 다른 외고들도 인기가 시들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전국 31개 외고의 입시 경쟁률은 2014년 2.3대1에서 2015년(1.9), 2016년(1.6), 2017년(1.4) 등으로 대폭 떨어졌습니다.

 외고 인기가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외고·자사고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데다, 사실상 외고 지정 및 해제 권한을 가진 교육감 다수가 ‘외고 폐지’ 입장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해 정부는 지난해 12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외고·국제고·자사고의 모집 시기를 전기에서 후기로 전환했습니다. 즉, 외고와 일반고 모집을 함께 실시하기로 한 것이죠.

외고·국제고·자사고 올해부터 우선선발권 폐지, 일반고와 동시 전형   [연합뉴스]

외고·국제고·자사고 올해부터 우선선발권 폐지, 일반고와 동시 전형 [연합뉴스]

 외고 불합격시 일반고 배정서 불이익

 단순히 모집 시기를 바꾼 것이 왜 문제가 되냐고요? 이전엔 외고에 지원했다 떨어져도 일반고에 쉽게 갈 수 있었습니다. 동시 모집을 하게 되면 외고 탈락자는 일반고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습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과거엔 외고에 지원했다 떨어져도 가까운 학교로 배정됐지만, 올해부터는 미달 일반고로 가야 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 가급적 외고 지원을 꺼린다”고 말합니다.

 경기도처럼 평준화·비평준화 지역이 섞인 곳은 더욱 문제가 심각합니다. 경기도의 경우 평준화 지역에 살더라도 외고에 지원했다 탈락하면 비평준화 지역 일반고로 입학하도록 정해놨기 때문이죠.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평준화 지역인 분당에 사는 학생이 성남외고에 지원했다 떨어지면 비평준화 지역인 양평이나 가평의 학교로 배정될 수 있다”며 “외고 합격에 100% 자신 있는 학생이 아니면 지원을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합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물론 아직 뚜껑을 열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외고 지원자 수가 이전보다 크게 줄 것만은 확실합니다. 결국 경쟁력 있는 몇 개 외고를 제외하면 미달 학교도 많이 생겨날 것이고요. 이렇게 되면 내년에는 부산국제외고처럼 일반고 전환을 결정하는 외고가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전국외고교장협의회 김강배 회장(서울외고)은 “외고 폐지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아직 부산국제외고 한 곳뿐이지만, 올해 입시 결과를 보고 나면 많은 학교가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압박이 심해지고 재정난이 더욱 커지면 지금과 같은 학교 운영은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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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와 2000년대 전성기를 구가한 외고가 쇠퇴의 길에 들어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외고는 1980년대까지 위상을 떨치던 ‘8학군’ 시대가 저물며 그 자리를 대신했고, 새롭게 생겨난 자사고 등 다양한 형태의 학교들과 경쟁하며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다음 회에선 정식 고교 학력을 인정받지 않는 각종학교로 출발해 입시명문으로 자리 잡은 지난 30여년간 외고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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