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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족발집 사장은 손가락 4개 빼앗겼다”…임대차사건의 전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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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 궁중족발집 사장 김모(54)씨가 7일 오전 8시 20분쯤 서울 강남구의 한 골목길에서 망치를 들고 건물주 이모(60)씨를 쫓고 있다. [사진 JTBC 뉴스룸]

서촌의 궁중족발집 사장 김모(54)씨가 7일 오전 8시 20분쯤 서울 강남구의 한 골목길에서 망치를 들고 건물주 이모(60)씨를 쫓고 있다. [사진 JTBC 뉴스룸]

임대차 문제로 건물주에게 망치를 휘두른 족발집 사장이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 9일 김모(54)씨를 살인미수 및 특수상해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 7일 건물주 이모(60)씨를 찾아가 차로 들이받으려 시도하다가 망치를 휘둘러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는다.

전날 김씨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 판사는 "범죄사실이 소명됐고 도망할 염려가 있다"라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10일 김씨 주변인과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에 따르면 김씨는 2009년 5월 21일쯤부터 서울 종로구 서촌 소재 궁중족발 영업을 시작했다.

개점 당시 김씨는 보증금 3000만원에 월 임대료 약 263만원, 계약 기간은 1년으로 상가임대차 계약을 했다.

이후 궁중족발이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2015년 5월에는 임대료를 약 297만원으로 한 차례 올렸다.

서촌의 궁중족발집 사장 김모(54)씨가 7일 오전 8시 20분쯤 서울 강남구의 한 골목길에서 망치를 들고 건물주 이모(60)씨를 쫓고 있다. [사진 JTBC 뉴스룸]

서촌의 궁중족발집 사장 김모(54)씨가 7일 오전 8시 20분쯤 서울 강남구의 한 골목길에서 망치를 들고 건물주 이모(60)씨를 쫓고 있다. [사진 JTBC 뉴스룸]

김씨와 이씨의 갈등은 2015년 12월 이씨가 건물을 인수하고, 2016년 1월 임대료를 인상하며 시작됐다.

새 건물주 이씨는 보증금 1억에 임대료는 기존의 4배가 넘는 1200만원으로 요구했다.

김씨는 항의했지만, 이씨는 "싫으면 나가라"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김씨는 4배에 이르는 월세를 요구한 점, 내용증명을 보냈음에도 임차료를 낼 계좌번호도 알려주지 않았고, 점포가치가 개점 초기보다 5배가량 상승했음에도 권리금도 주지 않는 등 사실상 쫓겨나는 처지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씨 측은 처음에 계좌번호를 적어줬으나 김씨 측에서 계약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버린 것이며, 월세 1200만원은 시세 수준이었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의 다툼은 2016년 4월 이씨가 해당 건물에 대한 명도 소송을 제기하며 법적 분쟁으로 번졌다.

김씨는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기대어 소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 법은 최초 임대차 계약으로부터 5년까지만 보장했다.

궁중족발을 차린 지 이미 7년이 넘은 김 씨에게는 해당하지 않았고, 결국 김씨는 명도소송에 패했다.

법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4일까지 12차례에 걸쳐 강제집행을 시도했다.

김씨는 그때마다 물리력으로 막았고, 임차인 시민 단체인 맘상모가 김씨를 도왔지만 물리적 충돌은 막을 수 없었다.

김씨 아내 윤모씨에 따르면 강제집행 과정에서 지게차가 동원되며 김씨 손가락 4마디가 부분 절단됐고, 지난해 11월에는 김씨가 몸에 시너를 뿌리며 저항하는 등 약 9개월 간 갈등이 이어졌다.

결국 두 사람의 갈등은 지난 7일 김씨가 이씨를 향해 망치를 휘두르며 파국으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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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빈곤사회연대는 성명을 내고 "(궁중족발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의 결과"라면서 "기간 제한 없는 임대료상한제 및 계약갱신권이 세입자에게 주어져야 하며, 폭력적인 강제퇴거를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의당 중소상공인자영업자위원회는 논평을 내고 "폭행 자체를 정당화할 수 없다"면서 "그러나 이 사건의 배경에는 임차상인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불합리한 법과 제도가 놓여있다. 우리 사회의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계약갱신 요구권을 보장하는 기간을 10년으로 늘려달라는 중소상인·자영업자들의 오랜 요구는 법개정안 발의가 돼 있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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