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중산층 양분화 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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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부분의 국민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믿고있는 일본에서 바로 그 중산층의 양분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같은 변화는 일본 경제성장의 밑바탕이 되어온 근로자들의 가치관마저 흔들리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근착 미국 경제 잡지 최신호(8월29일자)는 커버스토리로 「일본 중산층의 신화」를 다루면서 이른바 「경제적 기적」 이 중산층의 생활에 과연 그만한 질적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따져보고 있다. 대체로 대답은 「아니오」 다. 특히 주택문제가 극심한 동경주민의 경우 이제는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목표중의 하나로 꼽혀 온 「내집마련」을 포기하고 차라리 삶에 여유를 찾으려는 새로운 계층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가구 당 주거면적은 9백25제곱 피트(약25·7평) 다. 이는 미국의 약44평, 유럽의 29·2평보다 꽤 작은 것이다.
차량 보유 댓수에서도 훨씬 핵가족화 돼있는 미국가정은 가구당 2·2대 꼴이고 유럽은 1.3대 인데 비해 일본은 0·88대 수준. 반면 식비에 들어가는 돈은 일본이 평균 가계수입의 26%로 미국가정의 15%를 훨씬 웃돈다.
일본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90%는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믿고 있는데 경제학교수인 「기미히로·마사무라」씨는 일본의 중산층은 다른 나라 기준으로 볼 때 「저소득층」이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일본에서 요즘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크게 3가지다. 부동산을 갖고 있는가, 주식배당 등으로 돈을 버는가, 세금을 줄일 방도가 없는 샐러리맨인가 또는 자영사업자인가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상대적으로 빈곤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중하층으로 느끼게되는 이른바 신빈곤층(new Poor)이 분화돼 나오고 있다.
이들은 신부유층(new rich)과는 달리 지대나 임대료수입, 또는 주식 배당, 나아가 세금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지난 86년1월부터 88년1월 사이 동경도내에서 1억엔 이상의 토지자산을 갖고있는 가구수는 전체의 3%에서 13%로 4배 이상 늘었다.
주식시장의 활황도 중산층을 양분화 시키는데 큰 몫을 했다. 「돈이 있어야 돈을 버는」 추세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고 『이제 스스로의 노력으로만 부자가 되기는 힘든 세상이 됐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문제중의 문제는 엄청나게 비싼 주택 구입 부담이다. 2천5백만 명이 밀집돼 사는 동경의 주거지역 땅값은 1평에 5만4천달러(현행 환율 기준 3천9백만원)쯤 한다. 동경근교에 19평 남짓한 방3개짜리 아파트1채를 사는데 드는 돈을 담보융자로 빌어 갚아나간다면 한달에 2천2백달러(1백60만원) 골이 드는데 이는 평균 가계 전체 수입의 57%에 해당한다.
경제기획청이 계산한 바에 따르면 동경지역에서 30·5평 짜리 대지를 사서 여기에 36평 짜리 2층집을 짓는데는 약 65만5천달러(4억7천만원)가 들고 이를 주택금융으로 충당해 갚아나가려면 연5만1천5백38달러(3천7백만원)가 든다. 이는 동경지역 근로자의 평균연간임금(세후) 보다도 24%나 많은 것이다.
부담이 워낙 커 부모·자식 2세대에 걸쳐 갚는 2세대 주택금융까지 나와야 했다.
반면 동경의 호사스런 백화점 등은 값비싼 드레스와 보석류들로 그득하고 모피와 보석류로 휘감고 값비싼 호텔앞에 롤스로이스 차에서 내리는 남녀를 보는 일도 이젠 드물지 않다.
이처럼 극심한 주택난과 과소비 풍조에서 묘한 계층도 생겨났다. 그들 표현으로「아키라메·리치」라는 계층이다.
직역하면 「포기한 부유층」쯤 되는데 한마디로 내집 마련의 꿈을 버린 대신 기분 좋게 쓰자는 부유층이다. 해외여행을 즐기고 샤넬의류에 루이뷔통 핸드백 등으로 부를 과시한다. 이 같은 과시적 소비는 레저산업의 번창을 돕고있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분화는 수입구조에도 여실히 드러나 한편에선 유럽산 사치품수입이 점증하고 한쪽으로 개도국들로부터 값싼 의류 등의 수입도 늘고 있다.
경제기획청 조사국의 한 공무원은 『신부유층은 서독제 BMW 자동차를 사들이는 반면 신빈곤층은 값싼 수입속옷을 사야한다』고 표현한다. 여기에 경제대국 일본의 새로운 고민이 있다. <박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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