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생품질당당 '돼지아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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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방역구역! 외부인 출입 금지.'

경기도 이천에 있는 축산식품 전문업체 선진의 돼지 사육장 출입조건은 까다롭다. 전신을 세척하고 소독된 위생복으로 갈아입은 뒤에야 돼지를 만날 수 있다. 외부에서 착용하던 안경이나 반지 등은 반입 금지다. 다른 농장을 방문한 사람은 3일, 중국 등 구제역 발생 국가를 다녀온 사람은 7일이 지난 뒤에야 출입이 허용된다. 이같이 까다로운 출입 조건을 내건 사람은 '돼지 아빠' 박주완(43.사진) 농장장이다. 철저한 위생관리 때문에 그의 별명은 '에프엠(FM)'이다.

그가 결벽증에 가까운 위생관념을 갖게된 것은 아픈 추억 때문이다. 1993년 설사병이 돌아 키우던 돼지 600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던 것. 그는 "회사에서 한꺼번에 돼지를 가장 많이 죽인 사람"이라는 자괴감 때문에 한 달을 술로 보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농촌에서 가축 농장이 나오는 TV 드라마를 본 뒤부터 길러온 축산 전문가의 꿈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실패는 약이 됐다. 그는 완벽한 위생 시스템을 새로 갖추고 철저하게 돼지를 관리했다. 그 덕분에 선진은 2002년 구제역 파동을 무사히 넘기고 해외 조류독감과 광우병으로 돼지고기에 쏠린 소비자 수요를 사로잡아 지난 2년간 매출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그의 품질관리 노력으로 선진은 소비자시민모임이 선정하는 '우수 축산물 브랜드'에 2년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 논의를 긴장된 마음으로 주시하고 있다. 값싼 수입 소고기가 대량 유통되면 돼지고기 값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닥쳐올 축산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품질"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기르는 돼지는 덴마크산 랜드레이스와 영국산 요크셔, 북미산 두록 품종을 교배한 잡종이다. 잘 자라고 육질 좋은 돼지를 생산하는 관건은 우수한 품종과 건강한 어미 돼지를 고르는 능력에 달려 있다.

서울대 축산학과를 졸업한 뒤 18년간 선진에서 돼지 사육만 전담해온 그는 돼지 관상과 외형만 봐도 건강상태는 물론 부위 별 고기 생산량을 가늠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그는 "위생과 품질은 결국 가축을 기르는 사람의 정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아무리 많은 규정과 시스템을 만들어도 자식처럼 아끼는 마음이 없으면 제대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정성 들여 만든 돼지고기를 가족들이 맛있게 먹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는

그는 "아무 삽겹살이나 사들고 가면 13살 짜리 딸이 '이거 아빠가 키운 거 아니지'라며 인상을 쓴다"며 웃었다. 1973년 양돈 사업을 시작한 선진이 기르는 돼지는 8만여 마리. 사료생산에서부터 양돈.육가공.유통까지 돼지와 관련된 모든 사업을 수직계열화한 이 회사는 지난해 3500여억원 매출에 28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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