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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건보공단의 존엄사 교육, 재정 절감이 목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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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지난달 20일 작고한 LG 구본무 회장은 심폐소생술(CPR) 같은 연명의료를 하지 않고 임종했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정한 4가지 연명 행위 중의 하나다. 작은 장례식에다 화장(수목장)까지 존엄한 죽음을 실천했다. 조계종 무산 스님도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20일 곡기를 끊고 입적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2월 시행한 연명의료결정법이 한국의 임종 문화를 서서히 바꾸고 있다. 넉 달 동안 8500여명이 존엄사를 선택했다. 확산 속도가 빠르다. 그런데 최근 눈에 거슬리는 게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연명의료 중단과 호스피스 대국민 교육을 주도하는 점이다. 건보공단은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한참 전인 2015년부터 웰다잉 교육을 시작하더니 올해도 계속하고 있다. 6~11월에는 강사를 선발해 봉사단체·보건대학·시민사회단체 등에서 30회 교육을 한단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6/5

요람에서 무덤까지 6/5

건보공단은 국민의 보험료를 잘 관리해서 재정을 절감하는 일이 주요 업무다. 그런 기관이 존엄사 운동을 하면 ‘돈 아끼려고 이제는 국민의 임종까지 관리하느냐’는 오해를 받기에 십상이다. 2015년 교육 시작 때도 그런 오해를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확대하고 있다. 임종환자는 사망 전 1년 간 일반인보다 14배 많은 의료비를 쓴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 건보공단이 교육에 나선 이유가 14배를 줄이려는 의도가 아닐까. 존엄사가 확산돼 연명의료가 줄면 국민의 생의 마지막의 질이 올라가고, 그 결과로 건보 지출이 줄어드는 게 자연스럽다. 지금은 앞뒤가 바뀌었다.

건보공단은 보도자료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집착하기보다 돌봄치료를 통해 삶의 마지막을 품위 있게 마무리하도록 공감대가 확산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곳간지기에게 어울리는 말은 아니다.

병 치료보다 중요한 게 예방이다. 건보공단이 할 일은 병에 걸리지 않게 운동·상담을 돕고, 조기 진단을 독려하는 것이다. 그동안 잘못된 건보료 부과체계 때문에 민원이 너무 많아 여력이 별로 없다고 주장해 왔다. 내달 부과체계가 개선되면 민원이 줄 것이다. 건보법 1조(목적)의 맨 앞이 ‘예방’인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존엄사 교육은 이제라도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맡기는 게 맞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