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마음먹기」따라 진로 좌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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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아·울-하크」 파키스탄 대통령의 죽음은 야당 중심인물 「베나지르·부토」 여사의 집권을 가로막아 왔던 주요한 장애를 제거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카리스마적 야당지도자인 「부토」는 아직도 많은 장벽에 직면하고 있다.
현재 파키스탄 국내외의 모든 관심은 독립이래 20년을 넘게 파키스탄 정국을 지배해 온 군부의 향배에 모아지고 있다.
『군부는 몇 주 내로 파키스탄의 장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모슬렘계 이슬라마바드지의 「말리하·로디」 편집장은 말했다.
그는 또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되면 군부는 기본권을 정지시킬 것이다. 우리는 장기간의 군사통치에 다시 빠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3명의 군사령관들이 취한 첫 번째 조치는 민간정치인들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들 군사령관들은 지난17일 밤 각료회의에서 헌법에 따라 위기를 수습할 것이며 오는11월 16일로 예정된 선거를 예정대로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새로 부상되는 유력한 인물로 신임 육군참모총장 「아슬람·베그」 장군을 들 수 있다. 육군참모총장 자리는 사망한 「지아」 대통령이 생전에 끝까지 고수했던 막강한 파워를 가진 자리다.
「베그」 장군은 철두철미한 군인으로 주위의 신망이 높으나 정치에는 별 뜻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파키스탄 소식통은 『「베그」의 투철한 군인정신이 그로 하여금 정치가로 변신하는데 별다른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지아」의 경우도 그랬듯이 군인이 정치가가 되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군부와 가까운 한 고위관리는 「지아」 대통령 사망 직후 열린 군 장교단 회의에선 사태를 비교적 낙관적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만약 지금 선거가 행해진다면 「베나지르·부토」가 이끄는 파키스탄 인민당(PPP)이 우세를 보일 것이다. PPP는 비록 10년 이상 권좌에서 멀어져 있었다는 약점은 있으나 아직도 주로 근로 대중계층에서 강한 지지기반을 유지하고있다.
하지만 PPP는 이 같은 지지세력 못지 않게 또한 강력한 반대세력도 가지고있다. 「부토」의 선친이자 전 대통령으로 「지아」 대통령에 의해 처형된 「알리·부토」에 대한 반대세력들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지 정치분석가들은 파키스탄 군부 내에 「지아」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버렸다고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선 준장 이상 장군그룹에 강한 반 「부토」 세력이 남아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로서 매우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고급장성과 장관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가 앞으로 있을 선거를 기존의 정당토대에서 실시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선거를 기존 정당토대에서 실시할 경우 유리한 것은 PPP다. 이 경우 PPP는 파키스탄 국민의 4분의 3에 달하는 문맹층을 대상으로 강력한 선거운동을 전개, 이들의 상당부분을 PPP 지지세력으로 끌어 들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의문점은 「지아」가 지난 1985년 8년 간의 계엄령을 해제하면서 창당했던 파키스탄회교연맹(PML)에 있다.
PML은 지난5월 예상 못했던 해임으로 물러났던 「주네조」전 수상파와 「지아」측근 정치인파로 분열돼있다.
이 두 파벌은 「주네조」가 아직까지 당수로 있는PML의 주도권 장악을 놓고 서로 싸우고 있다.
서방외교관들은 서거운동과 PPP의 위협으로 이들 파벌간의 마음을 한군데로 집중시키게 할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이 경우 봉건적 지주와 파키스탄 내 친 체제파의 PML지지는 선거에서 「부토」에게 실질적 도전이 될 수도 있다.
PML은 또 PPP가 주도하는 1l까 야당 연합인 민주회복운동(MRD) 내의 소수 정당으로부터도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파키스탄 정키는 현재 모든 시선이 이슬라마바드에 쏠린 채 허공에 떠있는 형편이다.
한 외교관은 파키스탄 정치에 『혼란과 당황의 시기가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도자급 좌경평론가 「아야즈·아미르」는 『이제 「베나지르·부토」가 수상이 되느냐, 계엄령의 재등장이냐』가 문제로 남아있다고 말했다.【로이터 연합=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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