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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 밀리터리] 북 비핵화·체제보장 빅딜해도 주한미군은 별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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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을 열흘 남짓 앞두고 정부는 북한에 대한 체제 안전보장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북한 체제 안전보장은 추상적이다. 북한은 그들의 선제적 도발을 방어하기 위한 한·미 연합체제를 도리어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6.12 북·미 정상회담 결과로 북한 비핵화가 순조로우면 정부는 올해 종전선언에 이어 평화협정까지 밀어붙일 태세다. 그다음 이슈는 주한미군으로 옮겨 간다.

종전선언·평화협정, 주한미군 거론 #북, 체제보장에 미군 핵자산 철수 #4·27 선언에도 외세 배격 포함 #주한미군은 동북아 균형자 #유엔사는 평화관리기구로 전환 #군사력충분성의 자강 노력 필수

최근 북·미가 정상회담 개최에 난항을 거듭한 이유는 북한 비핵화의 목표와 방법, 조건과 보상 때문이다. 한·미는 북한의 과거·현재·미래 핵을 완전하게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폐기(CVID)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현재로선 일부(현재·미래핵)만 폐기하는 카드를 내놓으면서 그 조건으로 체제 안전보장을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파악된 북한이 제시한 체제 안전보장방안은 ▶(한국에서) 미국 핵 전략자산 철수 ▶한·미 전략자산 훈련 중지 ▶재래식·핵무기 공격 포기 ▶평화협정 체결 ▶북·미 수교 등 5가지다. 하지만 주한미군엔 핵무기가 없고, 자유민주주의체제인 한·미는 북한을 먼저 공격하지 않고 그런 사례도 없었다. 그런데도 북한이 무리한 체제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밑바닥엔 주한미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북한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평화협정이 본격화되면 자연히 주한미군이 핵심의제로 떠오른다. ‘4·27판문점 선언’에 담긴 민족 자주, 적대행위 금지, 평화체제 구축, 군축 실현 등에 포함된 북한의 속내도 비슷하다. 북한은 체제 안전보장 5가지에 따라 최소 조건으로 미국의 핵미사일을 쏠 수 있는 B-52와 B-2 전략폭격기, 핵잠수함 등의 한반도 전개 제한을 우선 주장할 것이다. 또한 과거 전술핵을 운영했던 주한미군의 규모 축소, 역할 변경, 나아가 철수까지도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한미군은 김정은 체제의 가시였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의 핵우산과 확장억제력을 제공하는 정책까지 문제 삼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 핵우산은 동맹국 보호와 세계적인 핵무기 비확산체제(NPT) 유지의 핵심이어서다. 북핵 문제와는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여기서 유의할 점은 평화협정이 체결돼도 당장 항구적인 평화를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한반도의 분단 상태가 지속하는 한 남북은 여전히 상대를 ‘잠재 적’으로 여기는 관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서독도 통일 전까지는 서로 ‘잠재 적’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주한미군은 평화협정이 아니라 적어도 평화가 정착될 때까지 한반도와 동북아 안정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주한미군의 규모는 2만8500명이다. 일본, 독일에 이어 세 번째다. 그동안 주한미군은 동북아와 한반도의 안보 상황에 따라 증감이 이뤄졌다. 앞으로 주한미군 이슈를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까?

먼저 주한미군의 법적 성격이다. 주한미군의 주둔은 한미상호방위조약(1953.10.1)에 근거를 두고 있다. 조약에서 한·미는 ▶외부의 무력공격 위협에 대해 상호 협의 ▶한·미에 대한 무력공격을 공동의 위험으로 간주해 행동 ▶이를 위해 대한민국 영토와 그 부근에 미국 전력의 배치 등을 약속했다. 따라서 상호방위조약이 존속하는 한, 미군의 한국 주둔과 전략자산의 전개는 국제법적인 근거가 있다. 이 근거에 따라 주한미군 주둔과 한미연합방위체제는 평화협정이 체결돼도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한 유엔군사령부는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면 그 존립의 명분이 약해진다. 북한과의 적대관계가 청산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유엔사의 해체 권한은 미국에 있다. 유엔사가 한국전쟁 때 유엔 결의로 창설됐지만 당시 유엔이 유엔사의 비용과 병력, 운영을 미국에 위임했기 때문이다.

힘의 균형 유지 측면이다. 주한미군은 그동안 북한 위협 억제는 물론, 동북아 및 아태지역 안정의 균형자 역할을 해왔다. 미래에도 그런 전략적 기능을 보장하는 게 한·미 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이다. 더욱이 중국은 아태지역에서 미국과 주도권 경쟁 중이다. 중국의 도전적 태도와 미·중의 다툼은 시간이 흐를수록 격화될 양상이다.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이 없는 한반도는 주변국에 고압적인 중국 영향권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20여년 전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가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에서 두었던 훈수가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우리의 생존과 번영에 직결된 주한미군은 북한 문제를 떠나 한·미 양국의 문제다. 북한과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독일도 통일 직전 체결한 ‘2+4(동·서독 + 미·영·프·소)협약’으로 구동독지역에 외국군을 잠정(1994년까지) 주둔토록 한 사례가 있다. 그때 구서독 지역에 주둔하던 미군을 비롯한 외국군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핵 운반 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제한하는 방안은 검토할 수 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남북한 재래식 군축을 거친 한반도 평화체제 제도화가 전제될 때다. 한반도 위기 시 또는 전시에만 전개토록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미국 핵우산의 핵심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상시 30분 대기 중이고, SLBM용 핵잠수함은 전 세계 대양 어디에서든 즉각 작전에 들어갈 수 있어서다. 또 괌에 배치된 B-52는 2시간이면 핵 투발 임무를 수행하도록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 밖의 모든 전략자산과 증원전력도 상황평가와 정책적 판단을 토대로 전개가 가능하다. 한·미는 이런 상황을 상정해 ‘전략적 유연성’과 ‘주한미군 전력운용 절차’를 이미 합의해두었다.

그런데도 한반도 평화구조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주한미군이 감축될 가능성은 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이어 재래식 군사력의 군축도 이뤄질 때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 조건이 구비되고 전쟁위협까지 크게 감소하면 주한미군의 역할 조정과 한미동맹을 재정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가령 군축 과정에서 북한 장사정포의 후방 철수에 맞춰 주한미군 다연장포(MRLS)대대도 후방으로 뺄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유엔 결의로 유엔사 대신 ‘평화관리기구’ 설치도 검토해 볼 만하다. 이때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도 조건에 맞춰 자연스럽게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대신 ‘군사력 충분성’에 따른 한국군의 자강 노력은 필수다. 우리 군의 근본적 혁신도 불가피하다. 따라서 주한미군 문제는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성급한 논의보다는 한미동맹과 국가안보전략 차원에서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류제승

8군단장과 육군교육사령관을 거친 예비역 중장. 독일 보쿰대 역사학 박사. ‘6·25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번역) 등 저서가 있다.

류제승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센터장·전 국방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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