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교육 대학생 113만 명…140배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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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가 교사 지붕에서는 빗물이 새고 질퍽거리는 맨 흙 교실바닥, 판자를 얽어 짠 책·걸상, 포탄을 갈라 만든 학교 종, 몽당연필….
해방 후 6·25를 거치며 어렵던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60년대 초반까지 시골에서 학교를 다닌 세대들에겐 향수로 남아있는 학창시절의 기억이다.
그러나 지금 도시는 물론 시골학교에까지 컴퓨터·VTR가 설치됐고 수세식 화장실, 스팀난방, 질 좋은 학용품, 비만증을 걱정하기까지 하는 어린이들의 활기찬 모습에서 우리 교육현장은 외형적으로는 40년 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됐다.
건국 후 국교 의무취학과 문맹퇴치·학생수용 시설 확보에 고심하던 우리 교육은 이제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 교육의 양보다 질을 생각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일제의 식민교육으로부터 해방된 우리 교육은 미군정 하에서「로카르」란 포병대위가·문교장관 격인 학무국 장으로 임명돼 교육의 초석을 마련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맞는다.
이에 대해 오천석 씨는 『불행하고도 동시에 다행한 일』이었다고 술회했다. 즉 「로카르」씨가 한국에 대한 지식과 교육적 지도력이 부족했던 것은 불행한 일이나, 이 때문에 그가 처음부터 한국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한국의 지혜와 판단에 대한 의존이 높았던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는 지적이다.
해방당시의 우리 교육 현실은 국교 2천8백34교에 학생 1백36만 명(교원 1만9천명), 중학 1백66개교에 학생 8만 명 (교원 1천1백 명), 고등교육기관 19개교에 학생 7천8백 명 (교원 7백53명).
현재의 국교 6천4백65개교에 학생 4백일만 명, 중·고교4천82개교에 학생 4백80만 명, 고등교육기관 2백41개교에 학생 1백13만 명과 비교하면 40년 새 국교 생은 3·5배, 중·고생은 60배, 대학생은 1백40배가 늘어난 것이다.
해방당시 64%에 불과하던 국교 취학률이 의무교육 실시로 완전취학 (내년 취학률1백%)을 이뤘고, 소수의 선택받은 엘리트교육기관이었던 중·고등교육 취학률은 이제 중학 1백%, 교 82%,대학 37%로 높아져 적어도 양의 측면에서 우리교육은 「세계 최 선진 5대국」안에 든다.
해방 후 민주교육 체제를 다지는 첫 작업은 우리의 교육이념을 세우는 일이었다.
이때 다소간의 논란 끝에 교육법 제1조에 명문화된 「홍익인간」 이념은 우리 교육을 이끄는 최고의 지표로 49년12월31일 교육법공포 후 27차례의 개정이 있은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있다.
학교교육의 골격을 이루는 학제는 일제하의 「복선형」에서 미국식 「단선형」으로 전환되어 교육법에 규정된 뒤 51년3월 6-3-3-4 학제가 확립되어 지금까지 9차례 개정이 이뤄졌으나 근간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의 변화에 따라 현재 유치원-5-3-4-4제 학제 개편 안이 전 국민의 관심 속에 검토되고 있다.
해방 후 문교시책의 첫 과제로 교육기회 확대를 위한 국교의무교육은 48년 헌법에 명시됐지만 학생 수용시설 마련에 따르는 재정부족으로 콩나물교실2부제 수업 등 문제점이 제기됐고 이는 아직까지도 우리 교육현실에 망령처럼 따라 다니고 있다.
신생 한국의 교육은 6·25전쟁을 겪으며 다른 어느 부문보다 심각한 타격을 받아 전체교육시설의 50%가 파괴됐다.
그러나 전쟁통에도 국민의 교육열은 식지 않아 노천학교·천막교실·피난학교에서 눈물겨운 교육이 계속 됐고, 이는 외국기자들에게 「학교의 파괴에도 불구하고 한국교육은 전진한다」는 기록을 남기게 했다.
국민의 교육열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인 인력 양성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으나 「입시경쟁」이란 다른 일면을 노출, 제도의 혼란과 학교교육의 파행을 가져왔다.
건국 후 40년 동안 우리 교육이 「아침에 세우고 저녁에 고치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임시제도만큼 진통과 수난을 당한 사례도 드물다.
중학입시는 국가고시 제 내신 제 무시험 제-공동출제 제 등 우여곡절을 거치며 64년 입시에서 법원판결에 의해 당락을 결정한 「무우즙 파동」을 겪은 뒤 69년부터 무시험제로 정착됐다.
고교입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년 평준화제도가 도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나 「평등교육」에 대한 「수월성교육」의 반론이 제기돼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다.
대입제도 역시 학교관리-국가관리 사이를 오가며 「우골탑」등 숱한 사회문제를 일으켰고 현재는 두 제도의 중간지점인 학교관리에 의한 국가출제고사가 시행되고 있다.
교육은 그 전문성과 자율성·독립성에 의해 일반행정으로부터 분리, 자치제로 시행되어야함에도 우리 현실은 제3공화국 이후 중앙집권적인 틀을 벗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지방자치제와 함께 실시될 교육자치제에 대한 교육계의 기대는 크다.
교육의 양적 성장과 근대화의 추세 속에 교직관과 사제관계도 몰라보게 변했다.「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교직관은 교사 스스로 「근로자」임을 자처하게 됐고 학생들도 스승을 「지식의 전수자」로 생각하는 풍조가 팽배해졌다.
이로 인해 교육이 정치적·사회적 영향에 초연하지 못했다는 반성과 함께 새 교육관의 창출이란 과제를 남기게 됐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교육개혁 심의회가 2000년대를 내다보며 제시한 교육개혁안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개혁안은 우리 교육의 실상을▲인간성 상실의 교육현장▲개성이 무시된 획일 교육▲교원의 사기 저하▲비인간적인 교육환경▲지시 일변도의 교육행정▲오도된 교육관과 교육풍토 등으로 파악, 교육의 위기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국가적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한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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