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 대화방' 음담패설은 사생활?…대학가 카톡방 성희롱 논란

중앙일보

입력

서울 시내 대학에 다니는 남학생들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여학생들의 사진을 공유하고 음담패설을 주고받는 등 상습적으로 성희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대 학생·소수자 인권위원회, 대학가 성희롱 카톡 고발 게시글 #"일대일 대화방은 사생활"vs"명백한 언어적 성폭력" #전문가들 "일대일 대화도 명예훼손·모욕죄 성립 가능"

서울대 총학생회 산하 학생·소수자 인권위원회(이하 위원회)는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대 등에 다니는 남학생 6명이 카카오톡 일대일 대화방 등을 통해 여학생을 실명으로 언급하면서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고발 게시글을 올렸다. 앞서 대학 내 카카오톡 성희롱 사건은 지난 2014년부터 국민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홍익대 등에서 잇따라 불거져 논란이 된 바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여학생 A씨가 경희대에 다니는 남자친구 B씨가 친구들과 본인의 사진을 공유하며 음담패설을 하는 대화방을 우연히 목격하면서다. B씨가 자신의 친구인 경희대, 고려대, 서울대, 경기대, 단국대, 서울시립대에 다니는 대학생 친구 5명과 나눈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등의 일대일 대화방과 단체 방(단톡방)이었다.

위원회에 따르면 이들의 대화방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대상으로 상습적인 성희롱이 이뤄졌다. 공개된 메시지를 보면 6명의 남학생은 피해자 A씨를 포함해 여학생들의 몸매를 평가하거나 성생활을 묘사하는 등의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들은 적나라한 발언을 언급하기도 했다. 일부 여성의 동영상이나 사진을 공유한 흔적도 남아있었다.

서울대 총학생회 산하 학생ㆍ소수자 인권위원회가 공개하기로 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 중 일부. [서울대 학생ㆍ소수자 인권위]

서울대 총학생회 산하 학생ㆍ소수자 인권위원회가 공개하기로 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 중 일부. [서울대 학생ㆍ소수자 인권위]

사건을 제보받은 위원회는 지난 1월 사건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이를 ‘언어적 성폭력 사건’으로 규정하고 대응하기로 했다. 앞서 일부는 피해자 요구에 따라 사과문과 카카오톡 기록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위원회가 가해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결과, 자신들의 발언임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 면담에서 가해자들은 일대일 대화방에서 나눈 내용은 사생활 보호와 비밀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대화가 단체 대화방이 아닌 개인 대화방에서 이뤄졌으며, 친구 관계와 상황에 따라 언어표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취지다. 이들은 “단톡방도 아니고 단둘이 사적으로 나눈 카톡을 다른 사람이 볼 거라 상상도 못 했다”며 “사생활의 비밀도 보장되어야 하는 인권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가해자들의 발언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이뤄진 ‘언어적 성폭력’이라는 입장이다. A씨가 카톡방을 보기 전까지 가해자들의 이름이나 나이도 모르고 있었지만,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모두 알고 있었다는 반박이다. 위원회 측은  “20명이 있던 단체 방에서 성희롱으로 분류되는 행위가 일대일 채팅방에서는 존중받아야 할 ‘사생활’로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며 “그러한 행위는 언어적 성폭력이며 전형적인 ‘카톡방 성폭력’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일대일 대화방’이라도 명예훼손죄와 모욕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법원은 판례상 일대일 카카오톡 대화도 전파 가능성이 있다고 간주해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재련 변호사는 “가해자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란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보장되는 것”이라며 “피해자의 실명이나 사진을 거론하고 정보를 유포했다면 모욕이나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일부 신상정보를 가린 카카오톡 대화방을 공개함으로써 이번 사건을 공론화하고, 가해자들이 속한 각 학교의 성폭력·인권침해 관련 기관에 신고할 예정이다.

최규진·성지원 기자 choi.k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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