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치산 "한반도 전쟁 혼란 안나는 게 중국의 마지노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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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싱가포르 북ㆍ미 정상회담이 다시 재개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 안도하는 분위기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앙일보에 보낸 이메일 논평에서 “남북 양측이 판문점 선언에 따라 회해협력과 관계개선을 추진한 데 대해 지지를 보낸다”며 “중국은 확고하게 북ㆍ미 정상회담을 지지하며 예정된 때에 이뤄져 성과를 거두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북ㆍ미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인내심과 선의로 대화와 협상을 계속하고 한반도 비핵화 과정을 추진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며 “중국도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의 속내는 앞서 있었던 왕치산(王岐山) 중국 국가부주석의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북미대화 무산되면 곤란' 속내... 평화체제협상서 중국 이해 관철 전략

왕치산 중국 국가부주석

왕치산 중국 국가부주석

러시아를 방문중인 왕 부주석은 “한반도에 전쟁과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국이 마지노선”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는 25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에 참석해 “한반도 문제는 확실히 중국의 이해와 관련된다.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 안정을 희망하고 전쟁과 혼란이 발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이게 중국의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쟁과 혼란이 일어나지 않으면 결국 한반도 문제는 비핵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이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확고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됨으로써 모처럼 조성된 대화 국면이 막을 내리고 한반도 정세가 다시 일촉즉발의 긴장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와 같은 한반도 위기 국면이 재연되는 것은 중국에도 리스크가 클 뿐 아니라 대북 제재 강화 압력 등에 따라 운신의 폭도 좁아지기 때문이다.

왕 부주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싱가포르 북ㆍ미 회담 취소 선언과 관련해 “(24일 일어난 일은) 내가 보기에 작은 에피소드다. 미국이나 북한 모두 상대방에 여지를 남기고 있다”며 “이런 일은 일종의 호사다마(好事多魔)로 보인다.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왕 부주석은 중국 대외업무의 총사령탑격인 외사공작위원회 위원을 겸하고 있어 양제츠 정치국원이나 왕이(王毅)외교부장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다.

왕 부주석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중국은 북 ·미 회담의 성사를 기대하며 높은 관심 속에 회담의 향방을 지켜보고 있다. 중국은 북·미 회담을 통해 비핵화의 성과가 나오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이 본 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비핵화와 평화체제 협상을 동시에 진행하자는 쌍궤병행론에 따른 것이다. 대화 국면이 궁극적으로 평화협정 구상으로 이어지면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 문제 등이 제기되면서 한반도의 역학관계에서 지금보다는 더 자국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중국의 셈법이다.

중국은 이런 전략 속에서 북한과의 관계 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박태성 노동당 부위원장이 이끄는 대표단이 열흘간 일정으로  중국의 개혁개방 성공현장을 둘러보고 돌아간데 이어 '김정은의 집사'로 불리는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2박3일간의 베이징 방문을 마치고 26일 귀국하는 등 북중 밀착 행보가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중국 배후론’에 대해서도 불쾌함과 함께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김 부장의 방중이 김정은의 3차 방중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란 관측도 나왔지만  중국은 '중국 배후론'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해석도 나온다. 관영 중국중앙(CC)TV가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의 담화를 생중계하는 등 비상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부의 공식 논평은 "대화를 통한 해결을 기대한다"는 원론적 입장 이외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 중국은 북ㆍ미 회담이 성사되면 자연스레 이런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두 번째 만난 다음에 태도가 좀 변했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에 대해 기분이 좋다고 말할 수 없다”고 불만을 표시했었다.

 한편 왕 부주석은 이날 "한반도는 중국의 핵심이익"이라고 발언한 것으로 잘못 보도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소동이 있었다. 왕부장의 발언 동영상에 따르면 그는 "한반도 문제는 확실히 중국의 이해와 관련된다(實在對中國利害攸關)"라고 중국어로 말했다. 이를 통역이 영어로 옮기면서 '이해'란 단어를 '핵심이익(core interest)'로 번역했다. 이는 로이터 통신 등에 그대로 인용되면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만약 왕 부주석이 한반도를 중국의 핵심이익이라 표현했다면 이는 한반도가 자국 영토나 주권이 미치는 지역이란 뜻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용어에서 핵심이익은 절대적으로 침해당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주권이나 영토 문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티벳 문제나 대만, 남중국해 문제 등에만 사용한다. 동영상 확인 결과 왕 부주석은 '핵심'이란 단어를 말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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