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비난하되 트럼프는 노 터치…북한 최선희, 펜스만 때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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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4일 “미국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는다”는 대미 위협 담화를 내놨다. 문재인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가진 뒤 귀국한 당일 오전에 발표했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 명의의 담화에서 “미국이 우리와 마주앉지 않겠다면 구태여 붙잡지도 않을 것”이라고 또 북·미 정상회담 불참 가능성을 거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다음달 12일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을 미루거나 취소할 수 있다고 북한을 압박하자 곧바로 맞대응했다. 북한의 태도로 볼 때 남북 정상간 직통전화인 핫라인 통화에 북한이 쉽게 응하지 않을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중앙포토]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중앙포토]

북한은 최선희 명의 담화로 미국의 비핵화 로드맵 압박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최선희'를 주어로 해서 회담 백지화를 선언하는 마지노선은 넘지 않았다. 이번 담화는 북한 외무성 등 당국의 발표가 아니라 최선희라는 외무성 부상 개인의 입장이다. 지난 16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개인 명의로 “북ㆍ미 정상회담 재고려” 가능성을 언급했던 것과 같은 형식이다. 특히 최선희는 담화에서 “미국이 (중략)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는 경우 나는 조미(북ㆍ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할 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까지는 북·미 회담 재고려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는 아니라는 뉘앙스를 담았다.

최선희 담화의 내용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도 주목된다. 최 부상은 펜스 부통령이 지난 21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한 발언을 문제삼았다. 최선희는 “무지몽매한 소리”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라는 막말을 썼지만 펜스 부통령으로 한정했다. 북ㆍ미 정상회담의 당사자인 트럼프 대통령은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뚜렷하다. 김계관의 16일 담화도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사이비 우국지사’로 비난했었다. 펜스 부통령과 볼턴 보좌관 모두 '선 비핵화 후 보상'의 리비아 모델을 강력 지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개인 명의 담화라는 형식을 통해 미국 당국에 ‘회담을 깰 생각은 없지만 리비아 이야기를 계속 하면 우리도 못 참는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며 “회담을 열기 위한 줄다리기 성격”이라고 해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연합뉴스]

개인 명의 담화를 김계관에서 최선희로 바꾼 것은 대미 압박을 강화한다는 의미도 있다. 김계관은 김정일 시대 북ㆍ미 회담의 산 증인으로 상징적 의미가 크지만 최근 현업에선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다. 반면 최선희는 김정은 시대 미국 담당 업무의 최전선에서 뛰어온 인물이다. 이번 북ㆍ미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회담장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김계관에서 최선희로 수위를 높이면서 볼턴 보좌관과 펜스 부통령 등 미국 내 대북 강경파를 정조준하는 것은 북ㆍ미 정상회담의 판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구축해 나가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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