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읽기] '기계의 세상' 톱니바퀴에 낀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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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중 한 장면.

웰컴 투 머신(원제 Welcome to the Machine)
데릭 젠슨·조지 드래펀 지음, 신현승 옮김, 한겨레신문사, 320쪽, 1만3000원

조지 오웰의 '1984'는 그저 기우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21세기에 접어든 현재 IT산업과 생명공학을 필두로 한 과학문명의 발달은 장밋빛 미래만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오웰의 예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웰컴 투 머신'은 현대 사회는 지배자가 모든 이들을 감시하는 '팬옵티콘'이 됐다고 주장한다. 미셸 푸코의 말처럼 팬옵티콘은 단순한 건축 아이디어가 아니라 현대 문명을 뒷받침하는 권력 관계의 모델이다.

이 책은 다양한 근거를 든다. 뇌에 직접적인 자극을 줘 행동을 조절하고 쾌락을 느끼게 하는 연구, 범죄자 여부를 판단하는 뇌지문 감식시스템, 특정 인종만을 공격하는 생화학무기, 누가 무엇을 사고 어디에 있는지 모두 알 수 있는 RFID(전자 태그)등이 그것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매트릭스'에서 봤던 이 광경들을 음모론이라고 몰아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선정적인 폭로에 골몰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기계문명의 기본적인 개념을 파고 들어 우리가 외면하는 현대 사회의 진짜 적을 폭로한다.

저자는 "오늘날에는 과학이 종교이고, 전문가가 사제이고, 관료는 문지기이고, 연구개발단체는 성당"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과학은 자연을 인공적인 것으로 대체하려 한다. "기계가 살아 있는 생물보다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이 받은 만큼 자신이 속한 환경에 돌려준다. 그렇지 않으면 환경은 파괴된다. 반면에 기계는 자신이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는다. 기계는 모든 것을 사용하고 소모한다."

현대사회는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을 최선으로 본다. 그 방법은 "모든 사람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 즉 생산에 걸림돌이 되는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다. 즉 다양성을 파괴해야만 한다. 그러나 '웰컴 투 머신'은 반대로 말한다. "관료주의는 산업 조직의 부산물이 아니라 바로 그 목적이다. 베버가 발견한 문제는 합리화와 질서와 소외가 관료주의의 근본적인 특성이며, 이것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물론 모든 형태의 산업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관료주의의 부족은 효율성 부족을 초래하고, 효율성이 부족하면 생산을 극대화할 수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개인의 더 많은 것을 감시하기에 혈안이 된다. 테러 방지를 명목으로 행해지는 공개적인 개인정보 수집과 도용은 지배자에게 필연적인 과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기계문명을 거부하고 문밖으로 나가면 기계문명 스스로 자멸한다고 선동한다.

일리는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힘들다. 이 책이 현대 기계문명에 대한 근원적인 고발인 동시에 일종의 명상서적으로 읽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의 명상서적이 개인의 마음에만 치중하는 것과 달리 '웰컴 투 머신'은 시스템을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그게 이 책의 탁월한 장점이다.

김봉석<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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