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법대 「정의의 종」8년만에 다시 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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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
80년 5·17 이후 8년 간 「거세」 당한 채 침묵을 강요받았던 서울대법대의 상징「정의의 종」이 최근 잃었던 소리를 되찾았다.
지난 56년 개교10주년을 기념해 서울대법대 10회 졸업생들이 기증, 당시 동숭동 캠퍼스에 세워졌던 이 종의 종추를 이교성 법대학장 등 몇몇 교수들이 되찾아, 지난 6월15일 제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정의의 종」은 그동안 4·19, 5·16 등 정치적 격변기마다 대규모 시위나 시국선언문 낭독의 첫 신호탄 역할을 도맡아와 「일」이 있을 때마다 당국에 의해 철거돼 캠퍼스 한구석에 처박히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나무판에 새겨진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한마디는 서울대법대가 배출한 숱한 법조인등이 학창시절이래 가슴에 품어온 경구. 『4·19전 후 해서는 거의 매일 「정의의 종」이 울렸고 이를 신호로 전 법대인이 한데 모여 시국을 논했지요.』
최송화 서울대법대교수(63년 졸업)는 『특히 5·16이후 공화당정권 때는 법대 학술제(낙산제)때 학생들이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는 플래카드만 내걸어도 경찰이 투입돼 철거하고 주동학생을 검거하는 등 「정의에 대한 알레르기반응」을 보였다』고 회고했다.
유신치하이던 75년 캠퍼스 종합화로 법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종은 탕국의 압력에 못 이겨 교내박물관 깊숙이 「유폐」됐다.
「80년의 봄」, 「정의의 종」은 박물관에서 나와 당시 이한기 법대학장과 학생 7백여명이 참석, 타종식까지 갖는 등 「민주화 소리」를 전했으나 5·17과 휴교령이 불어닥치면서 누군가가 또다시 종추를 빼내 「거세」시켜 버렸다.
『휴교령 후 강의가 다시 시작됐을 때 강의실 창 밖의 「정의의 종」을 가리키며 「울리지 않는 종이 쓸모 없듯이 학생여러분이 배우는 명목상의 법체계도 여러분 자신이 중추가 되어 힘차게 울려주지 않으면 아무소용이 없다」고 학생들 자각을 채찍질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고 한 법대교수는 말했다.
종추는 8년 뒤인 지난 6월l5일, 새로 학장에 취임한 이대성 교수 등의 수소문 끝에 법대건물 한 캐비넛 속에서 발견돼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대법관 임명을 둘러싸고 소장법관들이 집단 서명하는 등 「제2의 사법파동」이 일기 시작한 날이기도 했다.
있어야 할 제자리를 잃은 채 「유폐」「거세」의 반복 속에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온 「정의의 종」.
『앞으로는 「정의의 종」이 침묵을 강요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노교수의 말은 차라리 절규에 가까웠다. <노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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