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장외 총 점검「성공올림픽」캠페인>(13)국적불명 불량품 판친다|토산품 인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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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올림픽특수를 노리는 토산품의 대표적인 한국인형이「불량」투 성이 에다「국적」마저 없다.
색동저고리 다홍치마 입고 부채춤 추는 인형은 오똑한 콧날·푹 팬 눈매·짙은 눈썹의 서양인 얼굴이고 죽공예품은 대부분 일본 것과 엇비슷하다.
게다가 똑같은 물건의 값이 장소에 따라 3∼4배차가 나기도 해 외국관광객에게 한국이미지를 심어 줄 인형이 올림픽 관광객을 끄는데 실패하고 있다.
지난 7월 10년만에 고국을 찾은 재일 동포 김정자 씨(45·여·대판시 거주)는 부산·경주·서울 등을 여행하면서 선물을 사기 위해 토산품 판매점에 들렀으나 번번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각·죽공예품·도자기·칠기보석함·탈·붓 등 품목은 그런대로 다양했으나 한국고유의 멋과 향취가 담긴 토산품은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얼핏보면 한국치마저고리를 입고 있어 한국인형이지만 얼굴이 일본이나 서양사람을 본떠 도무지 한국인형 맛을 느낄 수 없었어요. 죽공예·도자기도 오히려 일본을 닮아 가려고 애쓴 듯하고요….』
김씨는 출국 이틀 전 겨우 서울시내 모 백화점에서「한국의 인형」을 찾아냈다.
창호지를 덧붙여 몸통을 만들고 삼베옷을 입힌 닥 종이 인형. 얼굴모습도 약간은 우직한 맛이 나고 불룩 나온 배꼽 밑까지 베 잠방이를 걸치고 피리 부는 시골소년은 김홍도 풍속화 속의 개구쟁이를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다소 비싼 듯했지만 45달러를 주고 5개를 골랐다.
출국 날 가방 속 선물꾸러미를 챙기던 김씨는 소년인형 바짓가랑이가 갈라져 맨살이 보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지 단을 재봉하지 않고 풀로만 붙여 놓아 풀기가 바싹 마르면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영세업자들이 날림으로 만든 인형들.
싸구려 화학제품 원단에 바느질도 하지 않고 풀로 붙여 물기에 닿거나 건조하면 저절로 갈라지기 일쑤고 머리카락도 검정 색 무명실로 대충 엮어 조금 시간이 지나면 풀어지고 간혹 손가락이 4개만 있는 것도 있다.
오동나무로 만든 원형과는 달리 피나무를 깎아 만든 산신령 목각, 팔목에 구멍을 뚫어 지팡이를 끼워 넣을 정도로 무신경하다.
지난달 26일 서울관광에 나선 독일인「한센」씨(37)는 D면세점에서 한국고유의 탈 1개를 6만원에 샀다.
다음날 L백화점면세점에서「한센」씨는 똑같은 탈이 2만원의 정가표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관광 안내원이 잘 아는 토산품점이 있으니 싸게 좋은 물건을 골라 주겠다는 말을 믿은 게 잘못이었어요.』「한센」씨는 뒤늦게 야 일부 외국인 전용토산품 면세점들이 단골여행사와 밀 거래를 트고 단체관광객을 소개하거나 데려올 경우 판매가의 일정비율을「커미션」으로 안내원들에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현재 전국의 민속공예품생산업체는 3천5백여 개소. 대부분이 영세업체이고 제대로 생산시설을 갖춘 곳은 3백여 개 업소에 불과하다.
생산품목은 섬유·목기·도자기·피혁·돌·칠기·금속·죽세·보석함·초자·초경·자수 등 13종 4천여 품목에 이른다.
칠기 보석함·도자기 등 이 인기지만 선물용으로는 턱없이 비싸다.
『휴대가 간편하고 값이 싸면서도 우리고유의 멋과 향취가 스민 토산품을 많이 개발하는 것이 한국고유의 이미지를 심어 주는 길』이라고 한국방문 관광객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김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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