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총알' 막을 방패 없었다···현대차 지배구조 결국 급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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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현대차그룹이 29일로 예정된 주총을 취소하기로 결정한 건 지난 3월 말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안이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은 21일 오후 공시를 통해 "현재 제안된 분할 합병 방안을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이날 '구조개편 안에 대해 말씀드립니다'라는 자료를 통해 "여러 주주 분들 및 시장과 소통이 많이 부족했음을 절감했다"며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지배구조 개편방안을 보완하고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 [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 [연합뉴스]

이에 따라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는 21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양사간 체결돼 있는 분할합병 계약을 해제했다.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추후 일정은 이날 발표에 포함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은 발표 이후 곳곳에서 암초에 부딪혔다.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은 외국인 주주들을 대상으로 반대표를 결집하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여기에 펀드 등이 의결권을 행사하기 전 자문 역할을 하는 ISS와 글래스 루이스도 최근 잇따라 반대 권고를 냈다. 지분 48.5%를 가진 외국인 주주들의 찬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외부 원군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반대 의견은 결정타가 됐다. 한국기업지배구조연구원은 국민연금과 자문 계약을 맺고 있다. 국민연금은 현대모비스의 지분 9.8%가량을 보유한 2대 주주로 이번 개편안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지면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인 현대모비스의 분할·합병 안은 무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재계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 의견을 냈다가 곤욕을 치른 국민연금이 자문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찬성 의견을 내기는 쉽지 않은 입장이었을 것"이라며 "현대차 입장에서는 강행했다 무산되는 경우 보다는 주주의 마음을 돌릴 시간을 벌고 후속 대책 마련에 나서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몽구 회장(6.9%)과 기아차(16.8%) 등 오너 일가의 우호 지분을 모두 합쳐도 30.1%에 불과한 지배구조에서 2대 주주의 찬성을 확신하지 못하자 개편안 자체를 미뤘다는 얘기다. 국민연금 측은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안건을) 자문사 의견에 의존하지 않고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위원회는 정부, 사용자 대표, 근로자 대표 등 9명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사용자 추천 위원 1명은 현재 공석이다.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 [중앙포토]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 [중앙포토]

분할합병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으로, 발행 주식수 3분의 1 참석과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찬성을 필요로 한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예정대로 29일에 모비스 주총이 열리고 약 70%의 주주가 참석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46.7%의 찬성표를 받아야 했다.
국내 투자 자문사인 트러스톤자산운용과 키움투자자산운용이 ‘찬성’ 권고를 냈지만 현대차그룹은 이들 두 곳 외에는 추가 원군을 확보하지 못했다.
현대모비스의 임영득 사장은 이날 "어떠한 구조개편 방안도 주주 분들과 시장의 충분한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지 않고서는 효과적으로 추진되기 어렵다는 점을 알게됐다"며 "글로벌 사업 경쟁력 및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추고, 주주와 시장의 신뢰와 성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의 투자·핵심부품 사업과 모듈·AS부품 사업 부문을 분할하고, 모듈·AS부품 사업 부문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추진했다. 오는 29일 오전 9시 서울 강남구에 있는 현대해상화재보험 대강당에서 임시 주총을 열고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간 분할·합병 안건을 의결할 계획이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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