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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월급의 종말과 쿠폰사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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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호 35면

성기완 계원예술대 융합예술과 교수·뮤지션

성기완 계원예술대 융합예술과 교수·뮤지션

중순쯤 되니 월급날이 기다려진다. 월급이 나와도 돈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카드사로 넘어가거나 이자로 빠져나갈 것이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지만, 그 한숨은 다시 한탄으로 바뀐다. 월급을 기다리다가 1년이 후딱 가버리고 그 1년이 10년이 되고 어느새 은퇴가 코앞에 놓인 신세가 된다. 이 고전적인 샐러리맨의 비애는 21세기가 됐는데도 여전히 옛날 그대로다.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은 월급의 노예로 살아간다. 이 시스템이 끝장나면 참 좋겠다. “월급을 받지 않고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어느 정도의 빈곤은 감수하겠습니까?” 하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단호히 “예!”라고 대답하겠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급여를 주고 노동을 사는 자본주의의 기본 구조가 무력화될 조짐이 보인다. ‘공유경제’ 시스템 때문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소유의 종말』(2000년)에서 소유의 시대가 가고 접속의 시대가 온다고 했다. ‘초연결 사회’에서 이런 예상은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넘어 만물인터넷(IoE) 시대가 되어 모든 사물·네트워크·사람이 연결되고 플랫폼의 공유화가 극대화되면 서비스의 비용이 점차 제로(0)에 가까워진다. 그렇게 되면 소비자는 더 이상 구매자가 아니라 사용자가 된다. 최소한의 비용만 내고 사용하면 되니까 재화를 잔뜩 쌓아놓는 소유는 별난 짓이거나 거추장스러운 일이 된다.

삶의 향기 5/19

삶의 향기 5/19

만물인터넷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예상되는 2040년쯤 되면 이미 ‘이윤’이라는 개념은 낡은 것이 돼버린다. 아무도 이윤을 남기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격’이라는 말이 사라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재화의 가격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제로에 가까워지며 의미를 잃고, 대신 연결의 횟수와 방식을 기록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이 지점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결정적으로 활용된다. 블록체인에 새겨진 거래 행위의 기록 하나하나가 그 주체가 연결성에 공헌하는 방식과 종류, 횟수를 낱낱이 증언한다.

이러한 시스템에서도 노동자는 여전히 월급을 받게 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급여 시스템을 대체할 뭔가가 있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쿠폰사회’를 한번 제안해 본다. 쿠폰사회란 블록체인에 새겨진 공헌의 정도에 따라 플랫폼의 접근 가능성을 쿠폰으로 자동 발행하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사회를 말한다.

예를 들어 보자. 나는 뮤지션이다. 블록체인은 실시간 업데이트되는 공개장부로, 이 안에 어떤 데이터를 넣을지는 넣는 사람 마음이다. 그 안에 음악 파일을 넣을 수도 있다. 뮤지션 스스로 발매한 앨범이 블록체인 안에서 고유키를 가지게 되고, 그 데이터에 접속한 사용자의 사용 기록이 블록체인에 새겨진다. 그 흔적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2급 음악가’의 쿠폰이 블록체인 안에 자동으로 등록된다. 2급 음악가는 무료로 전철을 탈 수 있다. 사용자의 접근 기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1급 음악가’가 된다. 1급 음악가는 더 수준 높은 공유 시스템에 접속할 권한이나 별도의 암호화폐를 받을 옵션이 주어진다.

월급날이 가까워져 오자 이런 꿈을 꿔본다. 필요한 만큼의 노동과 자발적 절약, 적당한 소비와 지속가능한 미래. 4차 산업혁명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은 이런 건 말하지 않는다. 여전히 이윤을 중심가치로 생각하고 경쟁에 이긴 나라만이 살아남을 것처럼 말한다.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미래 가치는 더 이상 이윤 창출에 있지 않다. 대신 연결성이 중심 가치가 된다. 이렇게 되면 ‘경쟁’이라는 행위양식도 의미를 잃는다. 대신 ‘공헌’이라는 행위양식이 권장될 것이다.

성기완 계원예술대 융합예술과 교수·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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