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최은희씨 "사랑했소 … 세상 다할 때까지 사랑하겠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영화밖에 모르는 분인데…평생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어요. 북한 수용소에서 C형 간염균을 얻고 2년 전 간 이식 수술을 받았는데 경과가 좋지 않았어요."

12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고 신상옥 감독의 부인 최은희(사진)씨는 연방 흘러내리는 눈물을 씻어냈다. 영화감독과 배우로서, 남편과 아내로서 평생을 고인과 함께해 온 반려자는 슬픔에 지쳐 있었다.

그는 고인에 대해 "감독으로는 최고였지만 남편으로는 부족했다"고 회상했다. "일에 몰두해 가정은 등한시했으니까. 온전히 영화밖에 몰라. 젊어서는 집에서 못질 한 번 한 적이 없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고인의 병에 대해선 "본래 술.담배를 안 하시는 분이라 간염에 걸릴 이유가 없다. 북한에서 소독이 안 된 주사기에 감염됐다가 25년이나 지나 발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에서 네 번이나 탈출하려다 붙잡혀 정치범 수용소 같은 곳에 끌려갔다. 거기서 단식을 하니까 강제로 영양제 주사를 맞았는데 그게 소독이 제대로 안 됐다"고 한다.

한동안 말을 멈추고 숨을 가다듬은 최씨는 울먹이며 "사랑했소, 앞으로도 사랑하겠소. 이 세상 다할 때까지 사랑하겠소"라고 탄식처럼 내뱉었다.

고인의 아들인 신정균 감독은 "지난달 재수술을 받은 뒤 호전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갑자기 병세가 악화됐다. 급박한 상황이라 유언도 못하셨다"고 전했다. 그는 "나의 아버지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영화인의 아버지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례는 고인의 연출작 '빨간 마후라' 등에서 주연을 맡은 영화배우 신영균씨가 장례위원장을 맡아 '대한민국 영화계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은 15일 오전 8시30분 서울대병원, 장지는 경기도 안성천주교묘원.

주정완 기자, [사진=뉴시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