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독해·문법 중심… 시험엔 "발음기호 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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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울 대치동에 사는 주부 신모(38)씨는 지난달 중순 학교에서 돌아온 중2 딸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새로 영어를 담당한 교사의 발음을 알아듣지 못해 단어 받아쓰기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거였다. 신씨는 "이웃 엄마들과 만났는데 '애가 영어선생님이 'dog'을 '도그'로 발음한다고 불평한다'는 얘기를 하더라"고 말했다.

#3. 초등학교 6학년 김모(12)군은 영작시험에서 '선생님은 침착하다'는 걸 'The teacher is calm'이라고 썼다가 틀렸다. 수업시간 중에 다룬 'The teacher is as cool as a cucumber'를 똑같이 쓰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둘 다 같은 뜻인 데도 말이다.

학교 현장에 영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턱없이 부족하다. 앞서 가는 아이들을 따라가기가 벅찬 교사들도 적지 않다. 학교 영어교육이 '의사소통을 위한 영어'가 아니라 '독해와 문법 중심의 영어'에서 맴돌 수밖에 없는 이유다.

광주의 P고 영어교사인 김모(50)씨는 "아직도 상당수 영어교사들이 문장을 해석해 주고 난 뒤 관련 문법을 설명해 주는 1960년대식 수업방식에 안주하고 있다"며 "심지어 책에 나오는 대화문은 한 번 읽어보는 것으로 끝내고 대화형 수업은 나 몰라라 하는 교사도 많다"고 말했다.

서울 D중학교의 안모(13)양은 수준별 이동수업의 상급반 수업을 할 때 선생님이 '영화'를 보게 하는 게 불만이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서다. 담당교사 박모씨는 "아이들의 선행학습 정도가 높아 영화를 이해할 수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양은 "영화는 혼자서도 볼 수 있다"며 "상급반이 된 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없어 학원에 더 의존하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자신의 영어수업 능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성과를 보이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5년차 영어교사인 상원중 조정현 교사가 그런 경우다. 교단에 선 이후 지속적으로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 연수를 해온 조 교사는 현재 1월부터 8월까지 진행되는 영국문화원 교사연수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다. 조 교사는 "지난해엔 영어수업의 절반 정도를 영어로 진행했는데, 올해는 80% 정도를 영어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 극심한 실력차=1월 초 영국문화원에서 간이로 영어교육능력시험(TKT)을 본 적이 있다. 응시 교사 32명 중 네 명은 40점대 이하(80점 만점)였다. 영국문화원 관계자는 "다수는 평균 이상의 실력을 보였지만 그렇지 못한 교사도 있어 양극화 현상을 보였다"고 전했다.

지난해 6개월간 장기심화연수를 마친 영어교사 272명이 토익 시험을 봤다. 그중 39명이 중학생 평균(568점)에도 못 미치는 점수를 받았다. 평균은 718점이었다. 시험을 본 한 교사는 "교사들이 시험준비를 굉장히 열심히 했는 데도 그렇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연수를 통한 영어교사의 실력 향상도 중요하지만 임용 때부터 실력을 갖춘 교사를 골라낼 것을 제안한다.

한양대 이기정 교수는 "최종적으로 말하기와 듣기를 잘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 외국에선=독일은 2차에 걸친 국가시험과 2년간의 교생실습이란 관문을 통과한, 어학실력이 뛰어난 교사 위주로 영어담당 교사를 선발한다. 덴마크는 영어권 국가에서 2년 정도 교육을 받아야 하는 등 엄격한 기준 때문에 영어교사 되기가 쉽지 않다.

서울대 이병민 교수는 "영어교사의 능력 차이를 감안해 과도기적으로 문법과 읽기 담당교사와 듣기 말하기 담당교사를 구분해 영어수업을 운영하는 것도 대안"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남중.고정애(스웨덴.핀란드).이원진(말레이시아) 기자, 상하이=유광종 특파원, 파리=박경덕 특파원, 도쿄=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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