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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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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런 어린 시절 '패거리 언어'와는 성격이 좀 다르겠지만 신작언어증(Idioglossia)이란 것이 있다. 이는 일종의 언어 발달 장애로, 유아들이 기존의 언어를 습득하지 못하고, 자신들만 아는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다. 재밌는 건 이 현상이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쌍둥이들 사이에서 종종 발견된다는 점이다. 태어나자마자 옆에 나란히 누워있는 쌍둥이 형제야말로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가장 자기랑 닮았고, 가장 친하고,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존재일 것이다. 우리의 어릴 적 친구들처럼 말이다.

미국의 시인 엘리자베스 비숍이 이런 얘길 했었다. "추측하건대 시가 생겨난 원인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지금 존재하는 사실의 의미를 다 설명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 간에는 어떤 불균형이 존재한다. 언어로 말해진 것들은 '사물들'에 의해 말해진 것과는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중략) '사물들'에 적합한 언어는 한 사람에 의해, 소수에 의해, 또는 그 시인의 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 의해 습득된다." 그러니까 시라는 건 문학적으로 인정된 신작언어증 같은 것이 아닐까.

어떤 사람과 얘기를 하고 난 후 몹시 지쳤던 경험은 누구나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는 주로 '스스로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남의 언어'를 사용했을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내가 잘 모르는 얘기를 하거나 나와는 아주 이질적인 사람들과 얘기를 했을 때 그렇다. 또는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남들 하는 식으로 얘기했을 때도 그렇다.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원하지도, 생각지도 않은 말들이 입에서 그냥 튀어나오면 혼란스러워지고, 그러다 보면 피곤해진다.

이런 피로감은 모국어보다 외국어로 말하는 것이 힘든 것과 같은 원리다. 시각적인 언어 능력이 발달한 사람이 하루 종일 글과 씨름하면 피곤한 것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음악 선생님이 이론 수업을 하시다가 '말하기 힘들다'며 갑자기 노래를 하신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후각과 미각이 발달한 사람은 요리를 자주 해야 하고, 길가에 핀 꽃들이나 구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시를 쓰거나 자주 읽거나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성숙한 사람들이라면 언제나 자신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을 테고, 또 각자의 언어를 사용해도 서로 순조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박상미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