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근로자 최저임금 올렸더니, 내국인 근로자 불만 … 신 노노갈등 불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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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호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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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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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수동에서 30년째 금속 패션 부자재를 생산해 온 정광수 대도도금 사장은 “원만한 폐업을 고민 중”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한때 직원이 100명 가까이 됐고 노하우가 쌓이면서 각종 특허기술을 보유한 ‘서울시 우수기업’에도 올랐지만 요즘은 통 사업하는 재미가 없다. 현재 대도도금 직원은 75명. 이 중 20명은 외국인 근로자다. 최저임금 인상분에 따라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을 올렸더니 이를 본 내국인 직원들이 서운해했다. 숙식을 제공받아 따로 생활비가 들지 않는 외국인 근로자에겐 급여를 올려줬는데 자신들은 그대로라 기분 나쁘다는 것이다. 이런 갈등으로 지난 2월부터 내국인 6명이 퇴사했지만 정 사장은 충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옛날 같으면 어떻게든 붙잡거나 사람을 구했겠지만 이젠 회사가 어찌 될지 몰라 그냥 두고 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최저임금 뛰자 해당자만 겨우 인상 #차상위 내국인은 혜택 거의 없어 #역차별 논란에 “차라리 공장 매각”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노동시장에서 임금의 최저선 역할을 한다. 최저선이 급격하게 올라간 만큼 바로 윗선에 위치했던 근로자는 ‘연쇄적 임금 상승 효과’를 기대한다. 이상적인 것은 자연스러운 조정인데,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다 보니 기업은 해당자만 겨우 올리는 형태로 대응하고 있다. 최근 등장한 새로운 노노갈등의 핵심이다.

지난달 경기도 여주의 A반도체 부품 공장이 매물로 나왔다. 외국인·내국인 근로자 간 갈등이 결정적 도화선이 됐다. 이 업체는 반도체 부품에 들어가는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얇은 파이프를 만들고 있다. 지난 2~3년간 반도체 수퍼사이클에 힘입어 주말에도 쉬지 않고 24시간 라인을 돌렸다. 6년 전 이 공장을 인수한 한모(65) 대표는 반도체 사업에 신규 투자한 결실을 보자 기뻤다. 하지만 올 들어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인건비가 발목을 잡았다. 이 업체는 심야 작업 근로자를 구하기 어려워 전체 근로자의 40%를 베트남 등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로 채우고 있다. 이들은 주말·야근 근무 수당(심야엔 주간 시급의 4배)과 숙박비 등을 더해 연간 6500만원가량 연봉을 받았다. 이번에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7000만원을 훌쩍 넘어서자 반도체 관련 기술을 지닌 내국인 근로자들이 월급을 올려 달라고 반발했다. 한 대표가 “최근 인건비 부담이 커 최저임금 인상 대상자를 제외하곤 올려주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자 일부 직원은 시위하듯 작업에 불참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회사를 그만둔 직원도 나왔다. 한 달 가까이 사태를 수습하려던 한 대표는 공장 정리로 가닥을 잡았다. 그는 “내국인 근로자들의 월급을 올리면 당장은 해결되겠지만 기업은 적자가 될 것”이라며 “이 상태를 지속하느니 지금 ‘몸값’ 좋을 때 파는 게 낫다고 봤다”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 22명을 고용한 경북의 한 영세 제조업체도 1월 최저임금 인상 뒤 한 차례 홍역을 앓았다. 내국인 인건비 부담이 커 인상을 하지 않다 보니 외국인과 내국인 급여 차이가 월 5만원으로 좁혀졌다. 이 회사 관계자는 “내국인 근로자 중에는 숙련공이 많고 소통이 잘 되기 때문에 생산성이 높다. 외국인 근로자는 대부분 단순 노무에 투입되고 있는데 거의 같은 급여를 지급하는 상황”이라며 “기업 내에는 정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속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전영선·염지현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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