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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롯데몰 개장에 “환영” “260억 보상 먼저” 조각난 민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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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달 27일 문을 연 롯데몰 군산 전경. 하루 전 중소기업벤처부는 지역 상인과 사업조정 미합의로 ‘사업개시 일시정지’를 권고했다. [사진 롯데쇼핑]

지난달 27일 문을 연 롯데몰 군산 전경. 하루 전 중소기업벤처부는 지역 상인과 사업조정 미합의로 ‘사업개시 일시정지’를 권고했다. [사진 롯데쇼핑]

지난 3일 전북 군산시 수송동의 한 분식집. 점심시간인데도 한산했다. 점원 김모씨는 “지난 주말(4월 27일) 롯데몰 오픈 이후 수송동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손님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했다.

이해관계 엇갈린 27만 중소도시

수송동은 2007년 롯데마트가 들어선 이후 상가가 군집하며 군산의 신도시로 발돋움했다.

김씨는 “군산의 상권은 영동(군산항 인근)에서 나운동, 수송동으로 발전해왔다. 10년 만에 메인 상권이 다시 조촌동으로 넘어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상생 합의’ 안 되자 영업정지 권고

롯데몰 때문에 죽을 맛인데도 점원 6명 모두 “시간 내서 꼭 (롯데몰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롯데몰 때문에 장사가 안 되는 건 맞지만 군산에도 이런 복합몰이 생겨 좋다. 지방 사람도 문화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사춘기 이상의 자녀를 둔 중년 여성이다.

롯데몰 군산 허가·개점 일지

롯데몰 군산 허가·개점 일지

지난달 27일 롯데몰 군산이 오픈하면서 인구 27만 명의 중소도시 군산의 민심이 조각 났다. 이해관계에 따라 롯데몰 개점을 보는 시각이 달라서다. 소비자로서 복합쇼핑몰의 혜택을 누리고 싶지만 당장 고용을 위협받게 된 분식점 직원의 처지가 이를 대변한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조선소에 이어 올해 한국GM 공장이 문을 닫으며 극심한 경기 침체에 빠진 군산은 롯데몰이라는 대형 유통점의 등장에 민심마저 흩어진 셈이다.

개점 하루 전 중소벤처기업부는 롯데몰과 군산소상인협동조합 등 3개 단체 간 사업조정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사업 일시정지’를 권고했다. 이어 개점 나흘째인 지난달 30일 ‘일시정지 권고 미이행’을 공표했다. 정지 명령을 앞둔 사전 조치다.

이건우 롯데몰 군산 지점장은 “개점 12시간 전에 (사업개시 일시정지) 통보를 받았다. 문을 열지 않을 경우 손해가 커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롯데몰은 계속 영업 중이다.

상인단체는 원칙적으로 ‘개점 3년 유예’를 내세웠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롯데몰과 자율조정에 나서고 있다. 핵심은 롯데몰로 인해 피해를 보는 영동·나운동·수송동 등 구상권 활성화를 위한 상생기금 마련이다. 근거는 2년 전 군산시가 발주한 ‘지역상권 활성화에 관한 용역’ 보고서다.

상인들도 의견 갈리고 시에선 방관

이인규 군산어패럴상인협동조합장은 “시가 발주한 용역 보고서에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한 450억원 기금 조성안이 있었다. 롯데가 260억원을 분담하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상인들이 롯데 측에 “260억원을 요구한다”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이 회장은 “군산시가 공익재단을 만들어 기금을 출연하는 것”이라며 “롯데가 납득할 만한 상생안을 제시하면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유통산업발전법 일부 개정 법률안 주요 내용

유통산업발전법 일부 개정 법률안 주요 내용

하지만 상인들의 요구는 입장 번복과 내부 분열로 인해 군산시민조차 의구심을 갖는다. 상인단체는 2015년 ‘롯데몰 입점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해 반대했다. 이듬해 군산시의 중재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에 따라 소통협의체를 꾸려 상생안을 논의했다. 지역상인의 아울렛 입점 기회 제공, 중복 브랜드의 롯데몰 입점 배제 등이다.

비대위를 탈퇴한 상인들은 어패럴상인협동조합·소상인협동조합·의류협동조합으로 갈라져 나왔다. 이들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에 근거해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각각 중기벤처부를 통해 사업조정을 냈다. 내용은 2년 전 소통협의체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유통법·상생법이 상인들에겐 ‘양손의 칼’이지만 업체 입장에선 ‘연속 허들’을 넘어야 하는 셈이다.

군산, 현대중·GM 문 닫자 경기 침체

당시 반대에 앞장섰던 상인 중 일부는 지금 롯데몰에 입점해 영업 중이다.

택시기사 김모씨는 “‘롯데 물러가라’고 관 들고 다니면서 난리를 쳤는데 어느 순간 없어지더라”며 “목소리 키운 사람은 롯데에서 점포 하나씩 받아갔기 때문 아니겠냐”고 말했다.

롯데몰 입점 갈등은 지난 지방선거 당시 문동신 군산시장이 내세운 ‘페이퍼코리아 이전’ 공약에서 시작됐다.

김학신 군산소상인협동조합장은 “군산시가 그 자리에 롯데를 유치하기 위해 행정 편의를 봐줬다. 하지만 지금 문제가 되니 ‘당사자끼리 해결하라’고 한다”며 “(구상권 활성화를 위한) 중장기적 발전 방안을 내놓는다고 하지만 그간의 행태를 봐서 못 믿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중재 역할에 나선 지자체의 오락가락 행정이 사태를 더 키웠다고 말한다. 중기벤처부의 ‘영업개시 일시정지’ 권고도 이례적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동일한 상황을 놓고 법이 여러 개이면 기업 입장에서는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며 “상생의 대상인 소상공인의 범위가 명확해야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 규제 강화 땐 3만여 명 실직”

2년 전 군산시 용역을 담당한 유대근 우석대 유통통상학부 교수는 “상인 단체가 3개로 분화하면서 스스로 대표성을 잃었다. 지금이라도 하나로 합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롯데몰 군산 논란은 새롭지 않다. 사실 복합쇼핑몰 등 대형 유통점이 등장할 때마다 겪는 진통이다. 다만 군산은 최근 GM대우 폐쇄 등 현안과 인구 27만 명이라는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더욱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전례를 볼 때 롯데몰과 상인단체의 줄다리기는 ‘상생기금 마련’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유통 관련 법은 문재인 정부 들어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 중인 ‘유통산업발전법 일부 개정안 주요 내용’은 지난해 9월 개정안보다 더 강력해졌다.

유통업계는 복합쇼핑몰 출점 시 상업보호구역을 확대하는 ‘입지제한’과 의무휴업 등 ‘영업제한’이 이뤄지면 매출이 하락하고 고용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2월 한국경제연구원은 유통 규제를 강화할 경우 한 해 최대 3만5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군산=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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