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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회계 위반 통지서, 스모킹 건은 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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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삼성바이오로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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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금융감독원은 기자들에게 이례적인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회계 규정 위반에 대한 조치 결과를 통지했다는 내용이다.

중앙일보, 금감원 자료 단독 입수 #고의적인 분식회계 등 내용 담겨 #삼성바이오 측 “무분별 노출 유감” #과징금 부과 예정금액 60억 책정 #금감원 “감리위서 결정적 단서 공개”

향후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에서 징계가 최종 확정될 것이란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다음 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가는 17% 급락했다. 금감원 통지 내용이 단순 회계 규정 위반이 아니라 ‘고의적 분식회계(재무제표를 거짓으로 꾸밈)’란 사실이 시장에 알려지면서다. 이대로 조치 결과가 증선위를 통과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주식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중앙일보가 단독 입수한 금감원의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규정 위반 조치 사전통지서’에는 ‘고의적 분식’을 증명할 ‘스모킹 건(결정적 단서)’은 없었다.

금감원은 “향후 증선위에서 결정적 단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지만 특별한 증거가 없다면 시장 혼란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금감원으로부터 조치 통지서 내용을 언론에 공개해선 안 된다는 공문을 받았다”며 “그럼에도 조치 관련 내용이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데 유감을 표한다”고 불편한 속내를 내비쳤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은 것은 갑작스러운 당기순이익 증가 때문이었다. 설립 이래 4년 연속 당기순이익 적자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5년 단숨에 1조9000억원의 순이익을 올리게 된다. 2012년 미국 바이오젠과 3300억원을 합작 투자해 세운 에피스는 2015년에 와서 시장가격(공정가치)이 4조8000억원으로 평가됐고, 이 가치가 회계장부에 반영되면서다. 헐값에 산 골동품이 뜻밖의 가격의 ‘진품명품’이 돼 회계장부에 기록된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초창기 투자원금으로 기록했던 에피스의 가치를 시장가격으로 반영할 수 있게 된 건 ‘종속회사’였던 에피스가 ‘관계회사’로 바뀌면서다. 삼성 측에선 에피스의 가치가 5조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만큼 합작 투자자인 바이오젠이 공동경영권(콜옵션)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봤다. 이렇게 되면 에피스를 더는 ‘종속회사’ 취급을 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국제회계기준(IFRS)에서는 ‘종속회사’를 ‘관계회사’로 전환하면 회사 투자가치를 시장가격으로 바꿔 기록할 수 있다.

금감원의 ‘조치 통지서’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평가한 에피스의 시장가치는 9149억원 ‘뻥튀기’ 됐다고 지적했다. 이 부분은 회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을 낳고 있다. 4조8000억원으로 평가된 에피스의 시장가치 중 9149억원만 ‘뻥튀기’ 됐다면 나머지 시장가치(4조8000억원-9149억원=약 3조8800억원)는 금감원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같은 ‘조치 통지서’ 안에서도 논리적 스텝이 꼬이는 부분이다.

한 회계전문가는 “금감원 조치 내용처럼 에피스 시장가격이 4조원만 돼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금과 똑같이 회계 처리를 했을 것”이라며 “2015년 당시 바이오젠 입장에선 공동경영권을 행사하면 2조원 규모의 지분 절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다른 회계전문가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장부에 반영한 에피스의 시장가격 자체가 잘못됐다는 의미로, 어떻게든 징계를 하겠다는 금감원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또 삼성바이오로직스 순이익 급증의 핵심 근거가 된 에피스 기업가치 평가 근거도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시장가치로 평가해도 에피스 9149억원 뻥튀기”

삼성바이오로직스 2공장 내부. 15만ℓ의 바이오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다. [중앙포토]

삼성바이오로직스 2공장 내부. 15만ℓ의 바이오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다. [중앙포토]

삼성물산이 2015년 8월께 제일모직과의 합병 이후 기업가치를 살펴보기 위해 작성된 보고서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결산에 활용해선 곤란했다는 지적이다. 당시 삼성물산으로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가치 평가를 의뢰받은 곳은 안진회계법인이었다. 안진회계법인은 관련 보고서에서 “에피스로부터 구체적인 자료를 제공받지 못해 세부적인 (기업가치) 분석을 수행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에피스의 시장가치는 4조8000억원으로 분석됐지만 세밀한 분석을 거치지 않은 보고서를 근거로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전환한 것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잘못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삼성 측도 할 말은 있다.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정확한 에피스의 기업가치 평가를 의뢰하고자 했지만 삼일·삼정·한영 등 대형 회계법인들은 삼성그룹 관련 회계 용역을 수행 중이라 평가 업무를 맡길 수 없었다. 안진은 같은 회사를 두 번 평가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회계 결산이 임박한 상황에서 기업가치 평가 용역을 맡길 곳을 찾지 못하다 보니 삼성물산 의뢰로 작성된 기존의 보고서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윤호열 삼성바이오로직스 상무는 “개발 중인 약품이 시판 승인을 받기 전에도 에피스 기업가치는 4조8000억원으로 평가됐고 시판 승인 이후에도 기업가치는 비슷하게 나왔기 때문에 기존 보고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며 “에피스의 수익성은 맥킨지 등 글로벌 컨설팅기관으로부터 평가받은 결과를 토대로 하고 있어 회계 처리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에피스에 제품 개발 자금을 제공할 의무(자금조달 보장 약정)를 부담하고 있음에도 관련 사항을 재무제표 주석에 누락했다고 지적했다.

누락 금액은 8727억원(2012년 기준)이다. 금감원은 이같은 세 가지 혐의에 대해 총 60억원에 과징금 부과 예정액을 삼성바이오로직스에 통지했다.

만약 금감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적 분식’ 증거를 제출해 그 혐의가 증선위에서 최종 확정되면 한국거래소로부터 상장폐지 실질 심사를 받게 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주식 매매 거래가 정지되기 때문에 개인투자자가 많은 바이오 종목 특성상 시장 혼란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거래소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상장폐지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그룹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는 계열사로 그룹의 재무적 지원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홍국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거래소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 등을 고려해 상폐 여부를 결정하므로 분식이 있다고 해서 상장폐지로 결정되진 않는다”며 “대우조선해양 등의 사례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 입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점은 이 사건을 계기로 검찰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증선위는 고의적인 분식회계로 징계가 이뤄진 기업은 검찰에 고발하게 된다. 대표이사는 해임권고 조치된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주사인 삼성물산·삼성전자 등으로도 수사 범위가 확대될 수 있는 점은 부담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제일모직 기업가치 평가를 사후 정당화하는 데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처리가 영향을 미쳤는지 수사가 진행될 수도 있다. 참여연대 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제일모직 지분을 많이 갖고 있어 제일모직의 가치 평가가 커질수록 오너의 그룹 지배력 확장에 유리했다고 주장한다.

결국 오는 17일로 예정된 감리위원회와 증선위에서의 핵심 화두는 금감원이 ‘고의적 분식’을 어떤 증거로 입증하느냐다. 만약 결정적인 새로운 증거 없이 회계처리 방식에 대한 해석만 바뀐다면 증선위의 신뢰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 같은 사건을 두 번 심의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일사부재의’ 원칙을 벗어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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