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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이 선사한 런던의 맑은 공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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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런던특파원

김성탁 런던특파원

자동차가 고장 났는데 2개월째 고치지 못하고 있다. 형편없는 영국의 서비스 수준 때문이다. 각종 이상 신호가 들어와 공식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예약하고 간 날 종일 아무 작업도 안 하고 다시 오라더니 두 번째 날에야 센서를 바꿔 보자고 했다. 세 번째 방문 때 센서는 갈았지만 부품센터가 일찍 닫아 결함 있는 전선을 못 바꿨다고 했다. 전선이 준비되면 알려준다던 직원은 2주째 무소식이다. 여러 번 전화하고 메모를 남겨도 담당자와 연결이 안 된다.

이러고도 선진국인가 싶다. 서울에선 서비스센터에 차를 가져가기만 하면 일사천리였다. 문제를 찾아내고 놀랄 만한 속도로 고친 뒤 언제 찾으러 오라고 전화나 문자로 알려준다. 다른 서비스 업종도 마찬가지다. 대고객 친절 경쟁을 벌이다시피 한다. 영국에서 빠른 건 범칙금이나 요금 고지서를 보내오는 것뿐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한국의 시스템을 그리워하다 딱 막히는 게 있다. 미세먼지 오염이 심각한 공기다. 런던 중심부에 오염이 남아 있지만, 악명 높던 스모그가 사라진 영국의 공기는 매우 깨끗하다. 최근 서울에 다녀온 지인은 “눈이 따끔거리고 거리에서 건물도 뿌옇게 보였다”며 “런던 상공 비행기에선 파란 하늘이 먼 곳까지 막힘 없이 보이더라”고 전했다.

런던의 공기 질이 좋아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영국에서 수십 년째 사는 교포는 “오랫동안 불편을 참으며 애쓴 결과”라고 설명했다. 런던에는 차 한 대가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도로가 좁은 곳이 많다. 인도에 걸쳐 주차 공간까지 만들어 놓아 이층버스가 곡예 하듯 지나간다. 그런데도 가로수를 뽑고 도로를 넓히는 일이 없다. 주택가와 도심 곳곳에는 우거진 나무가 잘 보존된 공원이 들어차 있다. 공간만 있으면 개발하는 우리와 달리 녹지대 보존에 치중하는 것이다.

대기 질을 개선하기 위한 규제도 강력하다. 런던 도심에는 원래 혼잡통행료가 부과됐는데, 2006년 이전 등록 차량에는 지난해 10월부터 추가로 10파운드를 물리고 있다. 도심을 지나려면 3만1000원가량을 내야 하는데 내년 4월부터는 과징금을 더 물릴 예정이다. 아예 차를 가져올 엄두를 내지 말라는 메시지다. 혼잡통행료를 걷는데도 남산터널이 우회도로보다 더 막힐 때가 많은 서울과 차이가 있다. 도심 주차료도 경유차가 휘발유차에 비해 비싸다. 해가 갈수록 격차가 커지도록 설계해 놨다.

런던시는 "매년 9000명 이상이 공기 오염으로 사망한다”며 전쟁을 치르고 있다. 편리에 익숙해진 서비스 강국 한국도 공기 질 개선을 위해서 만큼은 불편을 찾아 나서야 한다. ‘환경 이민’이 생겨날 정도라고 하니 그 불편은 가능한 한 크게, 빨리 겪을수록 좋겠다.

김성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