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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갈등으로 사회 분열’ 한국은 61% 유럽은 20%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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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호 02면

[SPECIAL REPORT] 대한민국은 갈등 - 공화국 정치 갈등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가장 큰 갈등요인은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 간의 갈등’(61%)으로 조사됐다. 영국 BBC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지난 1~2월 전 세계 27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다. 같은 질문에 대해 연정(聯政)과 협치(協治)의 정치문화가 자리 잡은 유럽 선진국들의 경우 답변이 20%대라는 점에서 한국의 정치 갈등 수준은 심각하다. 또 정치적으로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에 대한 불신 정도는 27개국 중 단연 1위였다. 한국민의 35%는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집단으로 ‘정치적 관점이 다른 집단’을 꼽았다. 프랑스(7%)의 5배에 이른다.

민주당 vs 한국당 논평 595건 분석 #드루킹 댓글 조작, 남북정상회담 등 #두 달간 3건 중 1건꼴 막말 으르렁 #갈등 조정은커녕 되레 혼란 부추겨 #‘내로남불’‘정치 9단의 꼼수 정치’ #따끔한 풍자 논평 이젠 사라져 #“상식 부합해야 국민 지지 얻을 것”

사정이 이런데도 정작 정치 갈등을 조정하고 완화해야 할 국회는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너 죽고 나 살기’식의 극단적 정치문화는 현안에 대한 여야 대변인들의 공식 논평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중앙SUNDAY가 지난 3월 1일부터 5월 3일까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낸 전체 논평 595건을 분석한 결과 3건 중 1건 꼴로 상대당이나 특정 인사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양 당은 두 달간 ▶대통령 발의 개헌안 ▶김기식 금감원장 자질 논란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남북 정상회담 등 정치 현안을 놓고 살벌한 ‘말의 전쟁’을 벌였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4·27 남북 정상회담 이후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청와대를 ‘김정은의 대변인’이라고 비꼬았다. “고모부를 고사포로 쏴죽이고, 자기 형을 독살한 독재자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분들이 대한민국을 이끄는 분들”이라고도 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를 겨냥해선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장’이라고 직격탄을 날렸고, 정상회담 만찬은 “국가 차원의 만찬이 아닌 ‘민주당 당·정·청 만찬 파티’”라고 격하했다. 드루킹 사건을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유린”, 미 존스홉킨스대 산하 한미연구소(USKI) 폐쇄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인사를 찍어내는 ‘악의 연대’”라고 표현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가만있지 않았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를 두고 “막 나가는 홍준표 대표를 보고 있노라면 ‘참 가지가지 한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며 비아냥거렸다. 남북 정상회담을 공격하는 한국당을 향해 김현 대변인은 “언제까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대롱을 통해서만 하늘을 보려 하는가. 옹졸과 미망(迷妄)에서 벗어나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드루킹 사건 특검 요구에 대해선 “한 달에 한 건씩 꼬투리 잡아 특검을 주장하는 한국당, 이 정도면 특검이 아니라 툭하면 던지는 ‘툭검’”이라고 주장했다.

공격당한 의원이 “기발하고 재미” 전화도

‘정치는 곧 말’이다. 하지만 양당이 쏟아낸 논평에서 유머와 풍자는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도 정치권에서 자주 사용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신조어를 만든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1991년 민자당 대변인 시절 김대중 당시 신민당 총재를 ‘정치 9단의 꼼수 정치’라고 비판했다. 당시로선 수위가 센 논평이었다.

이에 맞수였던 박상천(2015년 작고) 신민당 대변인은 “집권당 대변인의 상스러운 말을 청소년들이 배울까 걱정된다”고 점잖게 타일러 확전을 막았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주일대사를 지낸 권철현 전 의원은 당 대변인 시절 민주당 이상수 의원의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이 의원의 이름을 이용해 “앞에서 보면 이상하고, 뒤에서 보면 수상하다”는 논평을 내 당사자로부터도 기발하고 재미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유린’ ‘부풀려’ ‘뉘우쳐라’ ‘운운’ ‘발뺌’ 같은 상대방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단어가 없는 논평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한국당은 드루킹 사건에 보름동안 44건(민주당 35건)의 논평을 쏟아냈다. “상대 후보 공격 지시한 댓글 공작, 민주당은 민주주의 말할 자격 있나”(전희경 대변인), “청와대가 김경수-드루킹 게이트 당사자”(장제원 수석대변인), “사건의 본질은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에 대한 공격”(정태옥 대변인) 등 비판이 하루 평균 2~3건씩 쏟아졌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 논쟁이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근거를 토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상대방을 비난하는 논평이 아니라 상식에 부합하는 논리를 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야 극한 투쟁 ‘빈손 국회’ 이어지나

민주당 vs 한국당 논평 통해 본 상호 비판

민주당 vs 한국당 논평 통해 본 상호 비판

조정과 타협이 사라진 국회는 공전되기 일쑤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지난 3일 드루킹 특검과 국회 정상화를 놓고 협상을 벌였지만 결론 없이 끝났다. 그러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무기한 단식투쟁을 이어갔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당 지도부의 의지가 있어야 중진들이라도 나서 중재 역할을 할 텐데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홍준표 대표 체제에서 감히 바른 소리를 하겠다고 나섰다가 불이익을 감수할 만한 의원은 없다”고 말했다. 4월에 이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극한 투쟁에 돌입한 5월 역시 ‘빈손 국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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