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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블록체인 스타트업, 글로벌 시각을 가져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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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호 35면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우리나라에 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광풍이 불었을까?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꾼들이 우리나라에 유독 많았기 때문일까? 암호화폐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가 평균 이상으로 높아서였을까? 그렇지 않다. 소득의 불균형, 기회의 불평등, 자본의 양극화, 학벌의 대물림이 심각한 현실에서 젊은이들이 헬조선을 빠져나갈 출구를 암호화폐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패자부활전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 사회에서 한방의 역전 기회를 비트코인에서 발견했던 것 같다. ‘젊은이들이 맨날 거래소 코인들의 숫자만 쳐다보고 있다’고 기성세대는 혀를 찬다. 하지만 그들을 비난만 할 게 아니라, 그들에게 처한 오늘의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현실을 물려준 부채의식을 함께 가져야 한다.

화폐·주식·자산 될 수도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아닌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의 본질 들여다보라 #코인으로 일확천금만 노리지 말고 #새 기술로 새 세상 만들기 기여하는 #인류 보편적 서비스 만들어 주시라

그렇다면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실제로 헬조선의 탈출구일까? 안타깝게도 그럴 확률은 높지 않다. 대부분의 암호화폐는 결국 사라질 것이며, 가상화폐공개(ICO)를 한 회사들은 대부분 망할 것이다. 암화화폐의 미래는 밝지만, 우리가 투자한 코인들은 대부분 휴지가 될 것이다. 블록체인의 미래는 창대하겠지만, 우리가 투자한 ICO 회사가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다. 지금 우리는 블록체인 역사가 시작되는 소용돌이에 이제 막 진입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감당해야 하며, 5~10년 후에나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꾸려질 것이기에 그렇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무척 아름다운 기술이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그저 정교하게 엮어 놓았기에 구축하기가 어렵지 않고, 사용할 경우 얻게 되는 경제적 혜택이 명확하며, 금융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이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블록체인으로 과열된 지금의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걱정이다. 한국 벤처투자회사들은 100~500억원 규모의 고위험 고수익 투자(시리즈 B)를 거의 안 하다 보니, 자금에 목마른 스타트업들에게 ICO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할 필요가 없는 서비스인데도, 무리하게 블록체인 백서를 쓰는 작업을 한다.

그렇다면 왜 한국 투자회사들은 스타트업에 과감한 투자를 안 할까? 투자의 역사가 짧고, 가능성 있는 기업을 찾는 과정이 체계적이지 못해서 일 수 있다. 고위험 고수익 투자에 익숙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경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스타트업들이 대부분 한국시장만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이스라엘·유럽의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팔릴 제품과 서비스를 기획하는데, 우리나라 스타트업은 한국시장에 특화된 상품을 판다. 5000만 명 시장과 75억명 시장이 다르니, 한국 스타트업의 비즈니스모델도 부실해 보이고 기업가치도 적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왜 우리나라 스타트업은 한국시장만 겨냥할까? 글로벌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왜 부족할까? 첫째는 학교와 사회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언어라는 장벽이 있다 보니, 한국시장 안에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서비스, 한국에서만 매력적인 제품을 생각해내는데 익숙한 게다.

무엇보다 정부 투자를 포함해 많은 투자자가 스타트업 투자를 심사할 때 안전한 투자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 비슷한 성공사례가 있으면 투자를 받는데 용이하다. “미국에 OOO서비스가 있는데 아직 한국에는 없어서, 제가 한국형으로 변형하여 만들어보겠습니다”라는 비전이 한국에서는 먹히는 전략인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전 세계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들을 훨씬 더 선호한다. 누군가 이미 시도했다고 하면, 아무리 비즈니스 모델이 이미 성공했어도 오히려 흥미를 잃는다. 후발주자가 가질 수 있는 이익은 훨씬 적기 때문이며,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과 관련해, 전 세계에서 한국이 이렇게 주목받아 본 적이 없다. 세계 금융시장에서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회가 지금 펼쳐지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세상은 아직 당신 편이 아니다. 정부와 은행, 카드 회사는 막강한 중앙통제권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거래를 중재하고 중간 수수료를 받으며 살아가는 수많은 유통업체는 개인 간 거래를 안전하게 해줄 수 있는 블록체인을 위협이라 여긴다. 탈중앙화된 세상을 두려워하며, 그런 산업이 성장하는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창작자가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고, 소비자는 더 적은 돈으로 그것을 즐기는 세상이 와야 한다. 익명성을 통해 사생활은 보호하되 투명하게 데이터를 공유해야 한다. 모든 창작과정, 거래 과정이 정교하게 추적될 수 있는 세상이 와야 한다.

화폐·주식·자산·상품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으나 아직 아무것도 아닌,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의 본질을 들여다보시라. 코인을 사고 되팔면서 일확천금을 노리는데 몰두하지 말고, 새로운 기술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시라. 대한민국을 넘어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유용하고 매력적인 서비스를 만들어 주시라. 미래는 당신들의 머리와 손 위에 놓여 있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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