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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액팅이 아니라 리액팅…다 버리고 무대 오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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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화동 JTN아트홀 '발칙한 로맨스' 무대에 선 배우 김민교. 연극 연습할 때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인터뷰를 했다. 장진영 기자

서울 이화동 JTN아트홀 '발칙한 로맨스' 무대에 선 배우 김민교. 연극 연습할 때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인터뷰를 했다. 장진영 기자

TV 예능 프로그램 ‘SNL코리아’(tvN)의 감초 배우 김민교(44)가 대학로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지난달 25일 서울 이화동 JTN아트홀에서 개막한 연극 ‘발칙한 로맨스’에서 작ㆍ연출과 멀티남 배역을 맡았다. 지난달 27일 공연장에서 만난 그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것도 아니고…”라며 쑥스러워했지만 “보여주고 싶은 연기가 너무 많다”며 20년 경력 배우다운 욕심을 내비쳤다.

시나리오도 직접 쓴 작품이다.
“섹시하면서도 불쾌하지 않은 코미디를 만들고 싶어 2009년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달콤한 원나잇’이 이 작품의 원조다. 대학로에서 2011년까지 공연했는데 관객 반응은 아주 좋았다. 하지만 여전히 섹슈얼 코미디라고 하면 ‘저질’‘B급’으로 생각해 선뜻 공연을 보러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야기의 틀은 그대로 두고 야한 말이나 상황을 순화시켜 ‘발칙한 로맨스’로 바꿨다.”

‘발칙한 로맨스’는 성공한 영화감독 봉필이 첫사랑 수지를 15년 만에 호텔 ‘펜트하우스’에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대학로 무대에 꾸준히 올랐다. 2013년까지는 그가 연출을 맡았고, 이후엔 ‘김수로 프로젝트 1탄’ 연극으로 공연됐다. 그는 “깔깔 웃으며 공연을 보고 난 뒤 가슴 속에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이 남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발칙한 로맨스’에 직접 출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출연 동기는.
“나라는 사람을 있게 해준 건 연극이다. 연극으로 기초를 닦았다. 연극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뭘 해주고 싶었다. 나만 떨어져나가 방송하면서  혼자 먹고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늘 있었다. 제작사 대표가 ‘발칙한 로맨스’ 연출과 출연을 제안했을 때 ‘후배들을 위해 한번 할까’란 마음이 들었다. 후배들에게 장기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내 출연이 작품 흥행에 도움이 된다면 무대에 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연극 '발칙한 로맨스'에서 멀티맨으로 연기하는 김민교(위). [사진 집컴퍼니]

연극 '발칙한 로맨스'에서 멀티맨으로 연기하는 김민교(위). [사진 집컴퍼니]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으로 김수로ㆍ라미란ㆍ이종혁 등과 동기인 그는 1998년 뮤지컬 ‘서푼짜리 오페라’로 데뷔했다. 이후 연극ㆍ뮤지컬 무대를 오가며 배우ㆍ연출가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2013년 ‘SNL코리아’에 출연하기 전까지 그는 대중에게 생소한 얼굴이었다.

긴 무명 시절을 버티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나 스스로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고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새로운 얼굴은 늘 필요할테니 내게도 기회가 한 번쯤은 오겠지, 그 기회를 안 놓치게 준비해놓으면 되겠지'란 마음이었다. 내게는 ‘SNL코리아’가 그 기회였다.”  
연기를 잘한다는 건 무엇인가.
“좋은 연기는 액팅이 아니라 리액팅이다. 연기하려고 연기하는 게 아니라 상대 배우가 저렇게 하니까 그냥 이렇게 나와버리는 연기가 돼야 한다. 2000년대 중반 뮤지컬 ‘밑바닥에서’에 ‘사친’ 역으로 출연할 때였다. 당시 한 영화의 꽤 중요한 배역에 최종 캐스팅 단계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어느날 영화감독 등 제작진이 마지막 테스트 격으로 공연을 보러왔다. 정말 자신있었고 한번도 실패한 적 없는 공연이었는데, 그날 연기는 망치고 말았다. 너무 열심히 ‘액팅’을 해서였다. 다음날 다 내려놓고 상대 배우만 보며 그냥 생기는 감정만 갖고 연기를 했더니 너무 편했다. 연기는 ‘리액팅’이란 걸 그 때 깨우쳤다. 이젠 무대에 설 때마다 다 버리고 시작한다. 연습할 때 열심히 한 걸 내 몸이 기억할 것으로 믿고 기분 만들 준비만 하고 무대에 오른다.”
‘SML코리아’를 통해 다양한 코믹 연기를 보여줬다. ‘발칙한 로맨스’도 코미디극이다. 웃음과 저질의 경계에서 어떻게 선을 지키고 있나.
“많은 사람의 눈을 읽어야 한다. 누군가 기분 나쁠 것 같으면 재빨리 다른 쪽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감각적인 계산, 순발력이 필요하다. 신동엽형이 정말 잘하는 기술이다. 나는 관객이 귀엽게 웃을 수 있는 유머를 지향한다. ‘쟤네 하는 모습 귀여워’에서 ‘쟤네 야해’로 넘어가는 건 한순간인데, 귀여운 지점에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시나리오도 쓰고, 연출도 하고, 연기도 한다. 앞으로도 작가ㆍ연출가ㆍ배우의 역할을 모두 할 계획인가.
“섬에 난파된 이야기로 시나리오 집필을 시작하긴 했는데 너무 바빠 완성하진 못했다. 언젠가 영화로 만들고 싶은 이야기다. 연출도 하고 싶긴 하지만 한번 연출을 시작하면 배우로 캐스팅이 잘 안된다. 하고 싶은 연기가 너무 많아 연출은 천천히 할 생각이다. 코믹 연기뿐 아니라 진중하면서 울림있는 연기도 잘한다는 걸 보여주고 평가받고 싶다.”  
2016년 ‘택시드리벌’에 출연한 이후 2년 만의 연극 무대다. 연극판은 계속 어렵다고 하는데 어떤가.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발칙한 로맨스’를 연출하면서 출연까지 한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연극계 현실을 보여준다. 7∼8년전 쯤부터 연예인이 안 나오는 공연은 관객들의 관심을 못받는다. 제작자들도 팬이 많은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공연이 설 무대가 없어지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이게 영화보다 더 재미있어’하는 마음이 들게 하고 싶다. 그래야 ‘누구 보러 갈래’가 아닌 좋은 공연 보기 위해 대학로를 찾아오지 않겠나.”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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