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가 할 일, 안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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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야당에 이어 정부·여당도 국가안전기획부의 기능개편을 위해 안기부법을 개정키로 하고안기부의 정치사찰금지를 명문으로 규정키로 했다고 한다.
작년 대통령선거에서 각 정당이 다투어 안기부의 기능축소와 법개정을 공약한바 있었고 개정방향에 대해서도 이미 많은 의견들이 나와있는 상태이므로 빠른 시일 안에 민주화시대에 걸맞고 국민신뢰를 받을 수 있는 안기부의 탈바꿈이 실현되기를 기대하게 된다.
안기부법의 개정방향은 과거의 경험에서 우선적으로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안기부는 정보부란이름으로 창설된 이래 대공업무와 국가안보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국가 기구여야 할 본연의 위상을 지키지 못하고 「정권적 기구」로 일탈함으로써 많은 문제점을 일으켜왔다.
정보의 수집·분석뿐 아니라 행정조정·수사는 물론 정치사찰·정치공작까지 자행함으로써 야당탄압, 인권유린의 원성이 높았고 각종 행정기관의 불만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안기부법개정에 있어서는 이런 정권의 유지와 보호를 위한 모든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없도록 명백히 보장해야 할 것이다.
어떤 정부나 어떤 집권자가 들어서든 영향을 받지 않고 국가안전을 위한 정보활동에 전념토록 하는 정치적 중립화가 법개정의 가장 큰 전제가 돼야한다. 현행 안기부 법에도 정치활동관여 금지의 명문 규정이 있지만 안기부가 의례 당정회의의 고정멤버로 참석해 정치문제에 관여해왔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법개정에 반영돼야 할 또 한가지사항은 권한과 업무의 축소다. 현행법이 안기부에 방대한 권한을 부여하고 그로 인해 안기부가 무소불위의 무시무시한 권부라는 이미지가 형성돼 있으므로 권한과 업무의 축소가 필요하다.
안기부는 현역군인을 포함한 공무원을 경직시킬 권한, 정보·보안업무와 관련한 방대한 업무조정권한과 감사권한, 조직과 예산의 비공개, 특정범죄에 대한 수사권한 등 일일이 들 수 없을 만큼 막강한 권한을 외부의 적절한 견제를 받음이 없이 행사할 수 있게 돼있다. 이런 권한을 그대로 두고서는 도리어 본연의 정보·보안업무에 전념할 수 없게 됨은 물론이다.
안기부가 해야 할 정보의 수집·분석이란 원래 은밀하게 노출되지 않게 이뤄지는 일이다. 따라서 수사, 행정조정, 정치공작 등 외부에 노출되는 업무는 안기부 본연의 기능과는 맞지 않는 일로서 검찰·경찰 등에 이관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직접 국민과 행정기관을 상대하는기능은 폐지하는 방향으로 검토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안기부에 대한 국회나 국민의 감시·견제기능을 강화하는 장치도 법개정에 포함돼야 한다. 현행법은 예산내용을 공개하지 않음은 물론 기밀사항에 대한 국회의 예산심사, 국정조사·증언, 자료제출 등을 거부 할 수 있게 돼있다.
한마디로 안기부가 어떻게 운영되고 무슨 일을 하는지 국민은 전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의 자료제출이나 증언요구 등을 거부할 수 있는 기밀 사항을 법에 명백히 규정하고 그 밖의 사항은 국회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우리는 이 같은 안기부법의 개정이 빠른 시일 내에 실현되기를 기대하면서 법개정 전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은 개선하기를 바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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