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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해외 세일즈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오늘날 우리경제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기까지에는 수많은 세일즈맨들의 땀과 눈물어린 애환이 담겨져 있다.
세일즈에는 경쟁이 뒤따르게 마련이고 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해외시장에서의 세일즈는 국제적인 경쟁을 해야하기에 해외세일즈맨들은 그만큼 더 고달플수 밖에 없다.
때로는 재치와 기지로, 때로는 몸으로 때워야하는 세일즈맨들의 애환의 연속은 바로 한국경제 세계화l의 역사인 셈이다.
상담을 위해 연중 3분의2를 해외출장에 쏟은 그룹총수 세일즈맨에서부터 박씨명함을 들이밀며 고위층의 친척을 「사칭」했던 과장 세일즈맨들이 모두 한국경제의 현주소를 있게한 장본인들인 것 이다.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세일즈맨들에게는 불가능이란 없다. 『대머리에게 참빗을 팔고, 에스키모에게 냉장고f, 팔아라』가 그들이 실천해야할 절대절명의 좌우명이기 때문이다.
그들 앞에는 언제든 온갖 난관이 도사리고 있게 마련이지만 프런티어십으로 헤쳐나가야만 한다. 그래야 경쟁에서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해외세일즈맨들은 조상대대로 천부적인 장사꾼인 아랍상인들과의 상담도 거뜬히 해냈는가 하면 아프리카오지에도 「메이드 인 코리아」제품을 심어놓았다.
해외출장에 나서는 세일즈맨들에게는 국내에서와 같은 출퇴근 개념이 없어진다. 출국선 공항에서 비행기를 탈때가 출근시간이고 귀국하는 비행기를 탈때가 퇴근시간이다.
그러니 해외출장 스케줄이 확정된 날로부터 과중한 부담을 안을수 밖에 없다. 출장에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많아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일단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곳은 전쟁터나 다름없다. 준비해간 「실탄」과 「무기」로 무장, 하나하나 도시를 점령해야 하는것이다.
한때 한국경제수준의 대명사로 불렸던 현대자동차의 북미시장 진출사도 우리 세일즈맨들의 땀어린 애환으로 점철되어 있다.
지난84년 현대자동차는 국제적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 자동차의 본고장이자 황금시장인 미국공략 목표를 세웠다. 이를위한 전초작업이 캐나다시장 진출.
당시 선발대 8명은 현지아파트 한채를 월세로 계약해 낮에는 사무실로, 밤에는 숙소로 쓰며 가족들이 올때까지 1년간을 자취로 보냈다.
김치찌개 단일메뉴로만 매끼니를 때우다 얼마안가 냄새를 견디다 못한 이웃의 신고로 추방당하기도 했다.
아침10시부터 밤11시까지 대리점후보들과 상담을 계속해야했다. 자정쯤 숙소로 돌아오면 부어오른 발을 주무르는 일로 하루일과를 마감했다.
이러기를 1년여, 현대자동차는 85년 연간 8만대의 판매실적을 올려 선발인 일본의 혼다와 도요타를 제치고 캐나다 수입자시장의 선두주자가 됐다. 철저한 프로근성의 승리였던 셈이다.
83년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에 혹백TV 수출에 성공한 금성사의 경우는 단 한명의 과장 세일즈맨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아프리카 담당인 박모과장은 그곳에선 웬만한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뇌물이 필수불가결한 「통관세」란 사실을 알았다. 공항통관때도, 시내진입중 거치는 검문소에도 10∼20달러의 돈을 주어야 가지고 간 샘플에 괜한 밀수품 시비가 걸리지 않는 것이었다. 출장비는 빠듯한데 호텔비·음식비가 비싸 가지고간 라면을 호텔방에서 끓여먹자면 호텔보이에게도 얼마간을 주어야 했다.
그렇게해서 아낀 돈은 바이어를 손쉽게 만나기 위한 방편으로 비서에게 선물을 사주는데 썼다.
우여곡절끝에 바이어릍 만나면 그곳 풍습대로 9번이나 절을 해 경의를 표해야했다. 상담도중 그는 자기가 박씨라는 점을 강조, 상대방으로부텨 『박대통령과 성이 같은데 어떤 관계냐』고 묻기를 기다려 『내 형님』이라고 둘러대 그때부터 로열패밀리대접을 받으며 상담을 성공시켰다. 현지 풍습을 재빨리 익힌데다가 기지를 발휘해 성공한 케이스다.
그러나 고생을 했다고해서 모든 상담이 이처럼 순조롭게만 풀려가는 것은 아니다. 상담에 성공하기는 가뭄에 콩나듯하고 대부분의 상담은 실패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상대방의 의중을 읽어내야하는 스트레스정도는 다반사다. 세일즈맨들이 가장 고통을 당하는 대목은 바이어가 오락가락 할때다. 이런 경우 체면을 내던진 「융숭한 접대」로서 성사시키는 수가 더러있다.
이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구자경 럭키금성그룹회장이 후계자로 키우고 있는 장남 본무씨에게 바이어상대의 향응 베푸는 일부터 배우게 한것을 보면 어림 짐작을 할수 있다.
그러나 정작 세일즈맨들의 사기를 송두리째 빼앗아버리는 일은 상담이 거의 마무리될 무럼 .경쟁사, 그것도 국내경쟁업체가 덤핑공세로 끼여들어 판을 망쳐놓을 때라는 것이 이구동격의 하소연이다.
좀 오래된 얘기지만 세일즈를 위해 현지주재원 생활을 하다가 목숨을 잃을뻔한 사람도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68년 삼성물산의 사이공지점장 이모과장은 남들이 기피하는 곳이어서 징발되다시피 해 현지에 부임했다.
워낙 날씨가 더운 곳이라 저녁때라도 시원한 거처를 마련하려고 5층에 방을 얻으려했으나 엘리베이터가 없어 결국 2층방을 얻었는데 이것이 생과 사의 기로였다. 몇달뒤 사이공포격이 심할때 그집에 폭탄이 떨어졌는데 5층은 흔적조차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전쟁이 진행중에 있는 이란·이라크를 상대해야할 때도 이같은 위험은 언제든 세일즈맨 주변에 있다.
이러다보니 최근들어서는 해외주재원이나 해외출장을 기피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해외나들이나 해외근무가 「특혜」로 인식되던 때가 이미 지난 일이 된것이다. 이때문에 일부기업에서는 해외근무자에게는 승진에 다소의 프리미엄을 얹어주기도하고 해외지사나 현장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직원과 그 가족에게 자사제품을 구입할때 특별할인혜택을 주는 일도 늘어가고 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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