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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실패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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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유토피아』를 쓴 공상적 사회주의자 토머스 모어,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의 공통점은 모두 기본소득의 지지자라는 점이다. 좌파와 우파까지 폭넓게 공감하는 기본소득은 빈부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일정 현금으로 지급하는 소득이다. 조건을 붙이지 않고 현금을 나눠주는 대신 기존 복지는 줄인다. 좌파는 빈곤과 불평등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했고, 우파는 복잡한 사회보장제도의 관리비용을 줄여 행정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데 주목했다. 최근 들어선 자동화와 인공지능(AI)으로 실업의 위험에 노출된 노동자를 위한 기본소득이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 실험에 나선 핀란드가 기본소득을 확대하지 않기로 했다. 25∼58세 실업자 2000명을 임의로 선정해 조건 없이 2년간 매월 560유로(약 74만원)씩 지급하는 실험을 했지만 실업을 줄이는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의료비는 국가 부담이고 대학 교육은 무료, 실업급여도 넉넉할 정도로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진 핀란드에 무슨 기본소득까지 필요하냐는 지적도 나왔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과 똑같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확대되고 있는 생활임금제나 청년수당 등도 보편적 복지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이다.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복지를 누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또한 핀란드처럼 중요한 정책은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미리 검증하는 게 중요하다. 대선 캠프에 참가한 몇몇 학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공약을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이유만으로 밀어붙이는 건 무모하게 국민 전체를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 소득 주도 성장이 충분한 검증을 거친 뒤 추진되고 있는지 짚어 봐야 한다. 증거에 기반한 정책 수립(evidence-based policy making)이 없으면 J노믹스도 성공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