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범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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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즘은 신문보기가 민망스러울 때가 많다. 10대 청소년들의 비행이 하루가 멀다하고 사회면을 뒤덮고 있다.
말이 비행이지 그 유형과 수법은 날이 갈수록 성인범죄를 뺨칠 정도로 험악해지고 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갖가지 범죄가 놀이를 하듯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마구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범죄가 충동적이고 유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오늘날의 청소년 범죄자는 꼭 자아의 덩어리 같다. 체포된 뒤 그들의 첫 요구는 자기를 영웅처렴 크게 취급한 신문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자기의 사진이「실베스터·스탤론」이나 「마이클· 잭슨」같은 스타들의 사진과 나란히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있는 동안 그들은 전기의자 (사형)에 앉게 될 걱정은 눈곱만큼도 않는다』한 뉴욕경찰국간부의 말이다.
청소년 범죄는 대부분 혼자가 아니라 2명 이상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데 특징이 있다. 특히 여름철을 맞은 요즘은 성범죄가 더욱 극성을 떠는데, 또래끼리 어울려 다니다가 아무데서나 공공연하게 범행을 저지른다.
얼마전 서울 천연동에서 한 야간부 여고생을 10대 9명이 집단폭행한 사건은 새삼 충격적이다. 그들은 경찰서에 끌려가 한 친구의 군입대를 앞두고 『송별회를 기억에 남게 하기위해서 일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범행 동기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 같은 현상이 산업사회가 낳은 고질적 병폐라고 지적한다.
고도성장이 낳은 불건전한 소비행태는 『인간의 성마저 하나의 인스턴트식품처럼 순간적 쾌락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청소년들 앞에 거의 무방비상태로 노출되고 있는 각종 유해환경-이를테면 불륜을 소재로한 TV드라마, 선정걱인 쇼프로와 광고, 불법으로 유통되는 음란 비디오와 벗기는 영화들, 그리고 학교주변의 성인만화들은 천소년들을 범죄의 수렁으로 끌어들이는 주역들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의 해결은 간단하다. 성의 상품화를 막는 일이다. 하지만 누가 그 「성」이란 괴물의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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