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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은 철원 재두루미…치료 중인 짝 나오길 기다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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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의 한 논에 재두루미 한 마리가 홀로 남아 있다. [사진 김일남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강원도지회장]

22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의 한 논에 재두루미 한 마리가 홀로 남아 있다. [사진 김일남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강원도지회장]

22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의 민통선 마을인 이길리. 모내기를 준비 중인 한 논에 재두루미 한 마리가 홀로 서 있었다. 철원군 평야 일대에서 겨울을 보낸 3900여 마리의 재두루미들은 지난달 말에 이미 북쪽으로 떠난 지 오래다.

“보름 전에 일부 남아있던 무리마저 떠나면서 이제는 저 재두루미만 혼자 저렇게 논을 지키고 있어요. 이렇게 늦게까지 재두루미가 남아 있는 걸 본 건 처음이에요.”
이곳에서 33년째 농사를 지으면서 두루미 해설사로 활동하는 김일남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강원도지회장이 걱정스레 말했다.
그는 “지금은 모내기를 위해 논을 모두 갈아엎어서 먹을 것도 없다”며 “굶어 죽거나 삵이나 담비 같은 천적한테 잡혀먹히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22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의 한 논에 재두루미 한 마리가 홀로 남아 있다. [사진 김일남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강원도지회장]

22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의 한 논에 재두루미 한 마리가 홀로 남아 있다. [사진 김일남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강원도지회장]

두루미과의 재두루미는 천연기념물 제203호이자 멸종위기종 2급인 희귀 겨울 철새다. 10월 하순에 남쪽으로 내려와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연천 등 비무장지대 주변의 습지나 농경지에 머물다가 이듬해 3월이 되면 러시아 등 북쪽으로 떠난다.
4월 말까지 재두루미가 철원에 남아 있는 건 이례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박진영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은 “지금 시기면 북쪽 지방의 번식지에 이미 도착해서 번식을 위한 세력권을 잡아야 하는 시기”라며 “철새인 재두루미가 지금까지 안 가고 남아 있는 건 대단히 늦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리 다쳐 구조된 짝 기다리는 듯” 

DMZ 철새 평화타운에서 치료를 받고 회복 중인 재두루미. [사진 김일남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강원도지회장]

DMZ 철새 평화타운에서 치료를 받고 회복 중인 재두루미. [사진 김일남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강원도지회장]

그렇다면 재두루미가 이동 시기가 지났는데도 철원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지회장은 “재두루미가 머무는 곳 근처에서 올해 초에 강력한 한파로 인해 부리가 얼어붙은 재두루미 한 마리를 구조해 치료하고 있다”며 “그 짝을 잃어버려서 떠나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 재두루미는 한번 번식에 성공하면 부부처럼 계속 짝을 지어 다니고, 해마다 같은 곳으로 찾아와 겨울을 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지난 1월 강력한 한파에 부리가 얼어붙어 탈진한 재두루미가 구조된 모습. 천권필 기자

지난 1월 강력한 한파에 부리가 얼어붙어 탈진한 재두루미가 구조된 모습. 천권필 기자

지난 1월 25일 이길리에서는 부리에 얼음이 붙어 날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재두루미 한 마리가 구조됐다. 당시 철원의 체감온도는 영하 30도에 육박할 정도로 강력한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 구조된 재두루미는 현재 DMZ 철새 평화타운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회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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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 철원군 야생조수류 보호사는 “추위로 인해 발에 동상까지 걸려서 치료를 받았는데, 지금은 아물고 있는 단계”라며 “몇 달 동안은 계속 관리를 해줘야 하고, 가을에 다시 두루미들이 돌아오면 상태를 봐서 방사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22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의 한 논에 재두루미 한 마리가 홀로 남아 있다. [사진 김일남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강원도지회장]

22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의 한 논에 재두루미 한 마리가 홀로 남아 있다. [사진 김일남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강원도지회장]

전문가들은 짝을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일본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던 재두루미가 잠시 쉬어가거나, 부상 등으로 장거리를 이동할 수 없어서 낙오됐을 가능성도 있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박진영 연구관은 “건강 상태가 완벽하지 않거나 번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북쪽으로 가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며 “멸종위기종인 만큼 해당 개체에 대한 관찰과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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