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 끝나면 제자리 돌아간 남북경협주, 이번엔 다를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3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만남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11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내 주식시장에도 긴장감이 감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탓에 하루 사이에도 등락이 반복된다. 남북 경제협력 테마주의 움직임이 특히 그렇다.

급등하던 현대엘리베이터 하락 #현대건설 포함 토목·시멘트 업종 #계속된 상승 피로감에 주가 출렁 #“북미 회담 이어져 다를 것” 전망도

23일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현대건설 주가가 질주했다. 개장 10분 만에 5만5000원 선을 넘어서며 전 거래일과 비교해 10%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오후 들어 상승폭이 줄면서 전 거래일 대비 700원(1.39%) 오른 5만1100원으로 마감했다. 그동안 급격히 상승한 데 따른 피로감, 임박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얽히면서 이날 하루 주가 진폭이 컸다.

대림산업(0.85%), 현대산업개발(0.11%), GS건설(0.27%) 같은 다른 건설주 상황도 비슷했다. 대우건설(-3.03%), 남광토건(-0.32%)은 오전 한때 급등했다 오후 들어 하락세도 돌아섰다. 토목·시멘트 업종, 개성공단 입주 기업 등 다른 남북 경협 테마주도 유사하게 움직였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 재개 가능성에 최근 두 달 사이 5만원대에서 10만원대로 뛴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도 이날 흔들렸다. 하루 사이 4.76% 급락하며 9만81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짧은 기간 빠르게 상승한 데 따른 조정이다.

남북 경협 테마주의 역사는 사실 정상회담만큼이나 길다. 건설주는 남북 경협 대표 업종으로 꼽힌다.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빠지지 않고 경협 테마주로 부상했다. 남북 정상회담→경협 추진→북한 내 사회기반시설 건설이란 수순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관련 업종 주가를 들뜨게 했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첫 회담 당시 건설·토목·시멘트 업종과 함께 농업, 화학비료 업체 주가도 들썩였다. ‘고난의 행군’ 이후 대북 농업 지원책이 주요 의제였기 때문이다. 2007년 10월 2차 남북 정상회담 때는 경협 수혜 업종이 더 늘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 전기·통신 업체가 추가됐다.

하지만 업종 불문하고 결과는 비슷했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과거 2차례 남북 정상회담 사례를 보면 급등했던 경협 테마 종목 주가가 회담 후 제자리로 돌아가는 경향을 보였다”라며 “이는 회담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났다는 평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사례를 봐도, 지금 현재 상황을 봐도 남북 경협주의 가치를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 최광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 남북 경협 테마 종목 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은 전부 기대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남북 경협주에 대한 신중한 투자를 주문한다. 이광수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정치 관련 종목은 뉴스에 민감하고 변동성도 크기 때문에 남북 경협 테마주라고 무턱대고 투자하는 건 위험하다”라며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선택의 기준은 현재나 과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이 연구원은 “지금의 재무 상태, 실적, 벨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이 좋은 회사여야 이후 나쁜 상황일 때 충격을 덜 받고, 경협이 진행되더라도 더 직접적으로 수혜를 입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전 남북 정상회담과 다른 희망적인 부분도 있다. 남북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개최되기 때문이다. 남북미, 남북중미 정상회담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전 정상회담에선 없었던 종전 선언, 북미 수교 같은 성과물에 대한 기대감도 어느 때보다 크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5~6월 예정인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 수교 같은, 시장을 놀라게 할 만한 결과가 나온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남북 분단과 안보 불안으로 한국 주식시장이 저평가되는 현상) 해소를 제대로 논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남북 관계 변화의 조짐이 국내 경기, 기업 이익에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성과가 있어야 주가 흐름에도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