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사장 지분 적어 후계 굳히기 편법 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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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현대자동차에 대한 전면수사를 선언하자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주변에 긴장이 감돌고 있다. 연구센터 공사현장 앞에서 경비원이 사진촬영을 막고 있다. 김상선 기자

검찰 수사가 현대.기아차 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을 정조준하고 있는 양상이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후계 구도 정립 과정에 각종 편법과 불법이 동원됐다는 것이 지금까지 진행된 검찰 수사의 윤곽이다. 이 때문에 현대차 그룹 차원에서 정 사장의 경영권 승계를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 그 과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정 사장 지분 작아 고민=언뜻 보기에 현대차 그룹의 후계 구도는 정 사장이 이미 지난해 초 사장으로 올라 어느 정도 마무리된 듯하다. 하지만 그룹 지배력과 직결된 지분구조를 따져보면 '마무리'가 아니라 '시작'으로 봐야 한다. 그룹을 지배하는 핵심 계열사에 대한 정 사장의 지분이 아직 미미하기 때문이다.

현대차 그룹의 지배구조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로 짜여 있다. 그룹 총수로서 안정적인 지배권을 가지려면 이들 계열사 중 한 곳의 지분을 다량 확보할 필요가 있다. 현대차 그룹은 2002년 정 사장이 대주주로 있던 계열사 본텍을 현대모비스와 합병시키는 방식으로 정 사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승계시키려다 이 사실이 알려지는 바람에 실패하기도 했다. 현재 정 사장은 이들 세 핵심 계열사 중 기아차 지분 1.99%와 현대차 지분 0.003%(6445주)를 갖고 있을 뿐이다. 이런 지분은 그룹의 후계자 역할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문제는 돈이다. 정 사장이 기아차 지분 1.99%를 확보하는 데 든 돈만 1075억원이었다. 지분율을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인 10%로 끌어올리려면 현재와 앞으로의 주가를 감안할 때 6000억~1조원의 돈이 더 들 것이라는 추산이다. 정몽구 회장의 재산을 물려받는 방법이 있지만 상속 재산의 절반에 가까운 상속세를 마련하려면 지분을 팔아야 한다.

◆ 비상장사 키워 승계 자금 마련=정 사장의 지분 확대를 위해 현대차 그룹이 택한 방식은 비상장 계열사였다. 정 사장이 출자한 비상장 계열사를 키워 여기서 번 돈으로 핵심 계열사 중 한 곳인 기아차의 지분을 늘린다는 구도다. 2000년 10개 회사를 이끌고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현대차는 다음해부터 본격적으로 계열사를 늘리기 시작했다.

정 사장은 당시 30대 초반에 기획총괄본부 상무로 임명됐다. 정 사장은 2001년 글로비스를 세우고 본텍 지분을 사들이면서 두 회사의 지분 59.85%와 30%를 확보했다. 이후 글로비스와 본텍은 급속한 매출 성장세를 보이며 대주주인 정 사장에게 수천억원의 평가이익을 안겨줬다. 정 회장 부자가 50억원을 투자해 설립한 글로비스는 지난해 말 상장되면서 5년 만에 시가 1조5000억원대의 회사로 성장했다. 정 사장은 2004년 11월 글로비스 지분 25%를 노르웨이 해운사인 빌헬름센사에 팔아 1억 달러를 확보했으며, 지난해 8월에는 본텍 지분 30%를 지멘스에 팔아 570억원을 마련했다. 이때 확보한 돈으로 두 차례에 걸쳐 기아차 지분 1.99%를 확보했다.

정 사장은 글로비스 외에도 그룹 내 건설공사를 담당하는 건설사인 엠코 지분 25.1%와 그룹 광고대행사인 이노션 지분 40%를 갖고 있다. 이들 계열사 지분 매각 대금으로 기아차 지분을 늘리리라는 것이 대체적 관측이었다. 논란은 이들 회사의 성장 과정에서 부당 내부 거래 등의 불법이 개입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검찰이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는 것도 이 부분이다.

이현상 기자 <leehs@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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