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김재록씨… '왕자의 난' 전부터 인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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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현대차그룹에 대한 전면 수사에 나서면서 김재록(사진) 인베스투스글로벌 전 회장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몽구 회장, 정의선 사장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진 김씨가 건축 관련 인허가 로비는 물론 그룹의 비자금 조성, 계열사 인수합병(M&A), 경영권 승계 등에도 관여했을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김씨에 대한 수사도 현대차 본사 사옥 매입 과정에서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 '원 트랙'에서 추가 의혹을 모두 조사하는 '멀티 트랙'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현재 김씨가 현대차그룹의 계열사 M&A에 관련된 사실을 일부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 시점인 1998~99년 기아경제연구소 홍보기획이사, 기아차 경영혁신단 전략기획이사를 지내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 과정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현대차가 기아차 소속 3개 부품 계열사를 99년 구조조정전문회사에 매각했다가 다시 인수합병하는 방법으로, 사실상 정의선 사장의 개인회사로 만드는 과정에 김씨가 힘을 보탰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실제 4일 검찰이 5개 구조조정회사에 대해 실시한 압수수색 때 김씨가 대표로 있던 아서 앤더슨이 자산관리공사의 위아.카스코.본텍 채권 매각 때 주간사를 맡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검찰과 현대차 주변에선 금융 지식이 해박한 김씨가, 이들 회사를 헐값에 사들였다가 팔고 사기를 거듭해 회사 가치를 불리고 여기서 생긴 차익으로 정의선 사장이 주요 계열사 지분을 늘리는 방법을 조언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김씨가 재정경제부 등 정책당국, 금융권 고위 인사들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를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경제관료들이 평소 "김재록만 한 사람이 없다"고 칭찬하는 등 김씨의 기획능력을 높이 사온 것도 현대차 관계자들이 김씨를 주목하게 된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와 현대차그룹이 처음 만난 시점도 2000년 옛 현대그룹 '왕자의 난' 때보다 몇 년 앞선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아서 앤더슨이 문을 닫은 뒤 김씨가 만든 컨설팅 회사인 인베스투스글로벌의 한 전직 간부는 "현대차와 김씨가 1998년 10억원짜리 경영진단 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후에도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부지 매입, 그룹 경영상황을 진단하는 '레인보우 프로젝트' 등의 컨설팅 계약을 따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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