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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명예가 아니라 일하는 재미가 일의 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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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보광 스님은 ’우리가 일을 할 때 뭔가 깨닫고 터득하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일에 뿌리를 내린다. 진정한 고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보광 스님은 ’우리가 일을 할 때 뭔가 깨닫고 터득하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일에 뿌리를 내린다. 진정한 고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생전 성철 스님은 그를 가리켜 “가야산 산중에 호랑이 새끼 한 마리 크고 있어”라고 평했다. 경남 합천 해인사에 한창 3000배가 유행할 때였다. 하루는 매일 1만 배씩, 100일간 100만 배를 했다는 한 여성 신도가 성철 스님이 계시던 백련암을 찾아갔다. 성철 스님은 그 여성이 찾아올 때마다 백련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던 그 수행자의 안부를 물었다. 그 여성이 “스님께서 직접 보시면 알 텐데, 왜 자꾸 저에게 물으십니까?”라고 하자 성철 스님은 “니가 거길 다녀오는 길이니까, 내가 묻는 거 아이가!”라며 각별한 관심을 피력했다. 그 ‘호랑이 새끼’가 바로 해인사 희랑대의 조실 보광(寶光·77) 스님이다.

성철스님이 호랑이라 부른 보광스님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자문하라 #콧노래 부르며 일하면 돈 따라와 #산중 은둔 … 24일 참불선원 법회

그동안 보광 스님은 바깥으로 드러난 적이 거의 없었다. 신문이나 방송의 인터뷰 요청이 와도 늘 거절했다. 그래서 해인사의 ‘숨은 수행자’로만 알려져 있었다. 절집에도 그랬고, 바깥세상에도 그랬다. 13일 마침 기회가 왔다. 상좌(절집의 자식에 해당하는 제자)인 각산 스님이 선원장을 맡고 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참불선원에서 개원 법회를 열었다. 보광 스님은 거기서 법상에 올랐다. 상좌가 간곡히 청한 결과였다. 법문을 마친 보광 스님을 따라서 방으로 들어갔다. 온갖 물음을 던졌다.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호방하고, 정확하고, 명쾌했다. 성철 스님이 “가야산 호랑이 새끼”라고 표현했던 ‘번득임’이 인터뷰에서 던진 물음의 끝자락마다 되돌아 왔다.

참불선원에서 보광 스님이 법문을 하고 있다.

참불선원에서 보광 스님이 법문을 하고 있다.

요즘 청년의 삶이 힘들다. 취업도 어렵고, 아르바이트 생계에, 결혼도 엄두를 못 낸다. 청년 문제, 어떡해야 하나.
“그걸 속된 말로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라고 한다. 계란이 보면 어떤가. 내가 있어야 닭이 나온다. 닭이 보면 어떤가. 내가 있어야 계란이 나온다. 세상사는 어느 것이 먼저라고 따질 수가 없다. 그게 세상사다. 영원히 시비가 끊어지지 않는 게 세상사다. 원천에서 보면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중생이 사는 세상)는 해결 날 날이 없다.”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다. 그렇다고 그냥 둘 수는 없지 않나.
“맞다. 그럼에도 우리가 어느 정도는 해결을 하고 가야지. 평균 점수는 따고 들어가야지. 그럼 어떡해야 되겠나.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왜 일을 하는지. 그럼 첫째가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한다. 둘째가 이름이나 명예를 위해서다. 그런데 본래 일은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름이나 명예를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 뭘 위해서 일을 하나.
“일하는 재미를 위해서 일을 하는 거다. 그게 일의 근본이고, 수행의 근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의 본질을 망각한다. 돈은 벌면서도 몸은 편하려고 하지 않나. 기업가 입장에서 볼 때 좋아할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딨겠나. 또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좋은 기업주가 어딨겠나. 다 착취하려는 사람으로만 보이지.”
성철 스님은 문중이 달랐지만 보광 스님을 가리켜 ‘호랑이 새끼’라고 불렀다.

성철 스님은 문중이 달랐지만 보광 스님을 가리켜 ‘호랑이 새끼’라고 불렀다.

그럼 어떡해야 일의 재미에 쑥 빠져들 수가 있나.
“옳지. 그렇게 물어야지. 이걸 일에다 갖다 붙이지 말고, 도(道)에다 갖다 붙여보자. 똑같은 거니까. 우리가 불법(佛法·부처의 가르침)을 공부하지만 재미가 있어야 한다. ‘아하!’하고 깨닫는 재미 말이다. 일도 마찬가지다. 그게 있어야 공부가 자리를 잡는다. 그래야 이리저리 휩쓸려 떠돌아다니지 않는다.”
이리저리 떠밀리지 않으면 무엇이 좋나.
“그럼 뿌리를 내리게 된다. 다시 말해 그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일이 재미있을 때 뭐가 나오나. 콧노래가 나오잖아. 콧노래 나올 때 내가 한다고 하고 나오나, 안 한다고 하고 나오나. 그런 생각도 없이 저절로 나오잖아. 그렇게 되면 돼.”
그렇게 콧노래가 나오면 무엇이 달라지나.
“제일 먼저 게으름이 없어진다. 또 뭔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들어간다. 세상일이 그렇다. 열심히 안 하면 참 돈이 안 되지. 그런데 콧노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하는 것마다 돈이 돼. 왜 그렇겠어? 일의 본질에 재미가 들어가니까. 수행의 측면에서 봐도 그래. 우리의 본질에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는 게 있어. 그게 열반의 네 가지 덕이야. ‘상(常)’은 영원불변, ‘락(樂)’은 즐거움, ‘아(我)’는 진아, ‘정(淨)’은 청정이야. 설령 열반의 궁극에 못 들어간다 해도 사람들이 이걸 느끼는 거라. 그러니 수행을 하면 나도 부처고, 너도 부처고 그런 거지. 부처가 따로 있나. 특별한 종자가 따로 없어.”

보광 스님은 1957년 열여섯 살 때 해인사로 출가했다.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됐지, 한국전쟁 지나왔지, 보릿고개 겪었지. 어딜 가나 가난한 시절이었어. 절에 가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다고 해서 출가했지. 불교가 뭔지도 몰랐어. 그런데 절집에 와도 죽만 먹더라고. 나중에 알았어. 세상이 잘 살면 절집도 잘 살고, 내가 잘살면 너도 잘살고. 다 연기 관계라. 서로 연결이 돼 있는 인연 관계라. 둘이 아니니까.”

보광 스님은 출가 후 10년간 경전을 파고들었고, 그다음 10년간 강원에서 경전을 가르쳤다. 또 다음 10년간 선방에서 참선을 하다가 어느 날 “부처님 말씀이 참으로 한 마디 틀린 게 없구나”란 걸 깨달았다고 했다. 보광 스님의 안목과 소리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24일 오전 10시~낮 12시 30분 서울 대치동 참불선원(1577-3696)에서 열리는 ‘선승, 육조단경 대법회’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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