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원 댓글조작 아지트..."출판의 '출'자도 모르는 사람들 모여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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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문발동의 느릅나무 출판사 건물 모습. 김지아 기자

파주 문발동의 느릅나무 출판사 건물 모습. 김지아 기자

“저녁 9시에도 20~30명씩 노트북이나 태블릿PC를 들고 1층에 모여있었어요.”

15일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 위치한 느릅나무 출판사 인근에서 만난 동네 주민 A씨는 출판사 건물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다.
느릅나무 출판사는 ‘민주당원 댓글조작사건’으로 구속된 김모(48)씨가 공동대표로 있던 곳이다. 경찰은 김씨가 개설한 온라인카페 ‘경제적 공진화 모임’에서 이 사무 공간을 ‘산채’라는 은어로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곳에서 이들이 댓글 조작 등을 집중적으로 모의하고 실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출판 교정 업무에 종사한다는 A씨는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하기 위해 자주 이곳 앞을 지나다니는데, 30~40대 남성ㆍ여성들이 섞여 있는 모습을 자주봤다”면서 “사무 공간을 알아보려고 우연히 들어가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는데 출판에 대해 ‘출’ 자도 몰라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달 초까지만 해도 출판사 2~3층엔 불이 훤하게 켜져 있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라도 되나’하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출판사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2~3층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출판사가 북카페 영업을 했다는 1층까지 건물 내부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1층 북카페 외부 유리창에는 검은색 테이프가 붙어 있어 밖에서 안을 볼 수는 없었다. 이들이 사용한 사무실 중 유일하게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2층에는 아직 집기들이 남아있었다. 넓은 공간 한쪽에는 1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책상이 있고, 반대편 벽에도 10여 개의 머그잔이 놓여 있었다.

느릅나무 출판사 건물 1층 북카페 모습. 김지아 기자

느릅나무 출판사 건물 1층 북카페 모습. 김지아 기자

느릅나무 출판사 2층 사무실 모습. 김지아 기자

느릅나무 출판사 2층 사무실 모습. 김지아 기자

주민과 주변의 진술을 종합해보면 느릅나무 출판사는 유령회사에 가깝다. 지난 2월 폐업 신고를 할 때까지 8년 동안 책 1권 출간한 적이 없다. 원래는 출판업으로 등록한 업체가 아니었으나 건물 입주 시 출판업으로 등록해 급조된 회사라는 것도 건물 소유주의 이야기로 확인된다.

건물주이자 다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모씨는 “계약할 당시에는 출판 등록한 업체만 파주 출판단지에 입주할 수 있었다. 그 업체는 원래 출판 등록은 안 했다”고 전했다. 그는 “계약할 때 출판사를 등록하겠다고 해 등록한 후 입주한 것”이라며 “서울에 비해서는 임대료가 싼 편에 속하는데, 해당 출판사는 매월 꼬박꼬박 월세를 밀리지 않고 냈다”고 말했다.

건물주 이씨는 구속된 민주당원 김씨를 ‘대표’라고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느릅나무 출판사가 1층 북카페를 운영하게 된 것도 3~4년 전쯤 김씨가 직접 “1층을 우리가 추가로 써도 되겠느냐”고 먼저 연락해오면서라고 했다. 이씨는 “1층 공간이 마침 비어있는 상태였는데 김씨가 먼저 ‘북카페를 열겠다’고 제안해왔다”면서 “이후 직원들 이야기로는 ‘가끔 토요일이면 토요일에 주차장이 꽉 찰 정도로 사람들이 모였다’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말했다. 1층 북카페가 본격적으로 이들 모임의 장소로 활용되기 시작한 셈이다.

출판사 2층에서는 출판사와 관련이 없어보이는 P업체의 우편물도 확인됐다. 업체 홈페이지에도 주소지가 출판사와 동일하게 돼 있다. 업체는 수제 비누를 만들어 파는 곳으로 소개돼 있으며 오프라인 매장 안내도 나온다. 오프라인 매장은 다름 아닌 1층에 있는 북카페다. 이씨는 “김씨가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수제비누 사업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출판사에서 카페를 열고 부업 형식으로 다른 일을 하는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파주 문발동의 느릅나무 출판사 건물 모습. 김지아 기자

파주 문발동의 느릅나무 출판사 건물 모습. 김지아 기자

경찰 관계자는 “출판사 압수수색 당시 김씨 등이 증거인멸을 하다가 긴급체포됐기 때문에 범죄 모의나 실행이 이뤄진 아지트였을 수 있다”면서 “참고인 조사와 압수물 분석을 토대로 댓글 추천 수 조작이 어디서 어떻게 이뤄졌는지 특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원석ㆍ김지아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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