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협상 보니 북핵 해법은 의외로 간단…문제는 실천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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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인사이드 

 “평화로운 것이 정상이고 또 근본적으로 선의에서 비롯된다는 확신 때문에, 미국의 지도자들은 강압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일방적으로 선의에 기초한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협상을 추구한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이렇게 선의에 기초하여 일방적으로 나서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을 없애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 이유는 대개 전장에서 협상을 이끌어 내는 것은 압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압박을 제거하는 것은 적으로 하여금 협상에 충실하게 임하게 만들 이유를 감소시키게 되고, 상대방이 또 다른 일방적인 태도를 보일지 알아보기 위해 협상을 질질 끌도록 만들게끔 한다.”

군사정전위가 판문점에서 회담을 열었다.

군사정전위가 판문점에서 회담을 열었다.

24년 전인 1994년에 출판된 헨리 키신저의 대표작 ‘외교’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이다. 키신저의 말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대와 우려가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나온 여러 이야기 중 하나처럼 들린다. 하지만 키신저의 이러한 말이 다시 와 닿는 까닭은 위의 결론을 내기 위해 사용한 역사적 사례가 1951년 6.25 전쟁이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트루먼 행정부는 휴전협상을 위해 모든 전장에서의 공격적 행위를 중단시켰는데, 그 이유는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협상의 분위기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공세를 멈춘 후 협상이 매우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그때부터 질질 끈 협상 기간 동안 발생한 미군 희생자가 협상 이전 치열한 전쟁 기간 동안 발생한 희생자 수보다 많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세를 거둔 것이 결국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지 못한 주요 이유였다고 밝힌다. 키신저는 성공적 협상을 이끌어 내기 전에 압박을 거두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선택임을 강조하였다.

물론, 외교의 대가라는 키신저의 대표적 저술이기는 하지만, 4반세기가 지난 지금 다시 키신저의 저작을 언급하는 이유는 바로 위의 인용문이 지난 1월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가 결정된 이후 미국 정부 인사들이 서로 돌려 보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 북한의 전격적인 평창 올림픽 참가 배경에 대해 필자와 토론하던 미국 정부 관계자는 이러한 내용의 인용문을 보여주면서 결국 북한의 태도를 바꾼 것은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북한의 이러한 평화 공세에 현혹되어 압박 공세를 낮출 경우 결국 외교적인 방법을 통한 평화적인 비핵화를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왼쪽)이 2016년 12월 2일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다. [로이터]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왼쪽)이 2016년 12월 2일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다. [로이터]

북한이 우리 특사단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핵화에 관한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지 한달 가까이 지ㅏ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에게 직접적으로 비핵화에 관한 협상 의지를 밝히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한은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과거 성공적이지 못했던 단계적 협상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단계적 접근법은 미국이 계속하여 강조해온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인식과 배치된다. 북한과 중국이 단계적 협상론을 들고 나오자 우리 일각에서도 북한의 비핵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압박을 계속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과는 다른 정책 제언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가 단계적으로 양보해야 북한이 그에 맞춰 비핵화에 나설 수 있다는 과거의 논리가 되풀이 되고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북한이 올해 들어 갑자기 태도를 바꾼 배경이 우리가 무엇을 양보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북중 회담 이후 북한의 비핵화 협상 과정이 매우 복잡해졌다는 문제 제기가 많아졌다. 그러나, 북한의 태도 변화 이유가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 그리고 평화적인 비핵화를 위해선 압박을 지속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임을 알 수 있다. 상황이 복잡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해법은 여전히 간단하다. 문제는 해법은 간단한데, 실천을 할 수 있는가이다. 결국 압박을 지속할 수 있느냐, 거기에 달려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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