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중국이 움직인다..러시아 손잡고 한반도 주도권 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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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특사로 러시아를 방문한 왕이(오른쪽)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활짝 웃고 있다.[AP=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특사로 러시아를 방문한 왕이(오른쪽)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활짝 웃고 있다.[AP=연합뉴스]

“단계별로 동시에 일괄 타결하자.”
중국이 내놓은 새로운 북핵 해법이다. 북한의 단계론과 미국의 일괄타결책을 합쳤다. 이 방법만이 지속할 수 있고 대화 중단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의 단계론과 '선폐기 후보상' 방식이었던 리비아식 일괄타결책을 기계적으로 결합했을 뿐 서로 충돌할 경우의 해법은 찾아볼 수 없다.

왕이 중 외교부장 “북핵 단계·동시·일괄 타결을” #중·러 외상 “비핵화 대원칙, 평화협정 동시 추진” 주장 #지난해 ‘쌍중단·쌍궤병진·단계론’ 공동성명 업그레이드

중국의 새로운 북핵 해법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로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한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달 베이징에서 ‘단계적·동시적 해법’을 내놨지만 반대에 직면하자 미국 방안을 결합한 뒤 러시아의 담보를 받아낸 모양새다.

왕 국무위원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차례로 만나 북핵 해법을 공유했다. 기자회견에서는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한반도 정세의 새로운 변화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 교환이 있었다”며 “새로운 컨센서스를 달성했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미국을 견제할 필요가 생기면 항상 유엔 상임이사국 러시아를 찾는다.
셋을 정립(鼎立)시켜 둘로 하나를 통제하는 중국의 오랜 전술이다.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이어졌을 때도 중·러는 한목소리를 냈다. 중국의 쌍중단(雙中斷,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군사훈련 동시 중단), 쌍궤병진(雙軌竝進,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한과의 평화협정 동시 추진)과 러시아의 단계론(分步走)을 묶어 ‘중·러 한반도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당시 중·러의 제안은 유엔 대북제재에 묻혀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번에 업그레이드가 되어 다시 돌아왔다.지난 1월에도 중국은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부장 겸 한반도 사무 특별대표가 “문턱 낮추기, 동시 행동, 반걸음씩(低門檻 同步走 小步走)” 해법을 내놓은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번에 중국이 내놓은 ‘단계·동시·일괄’ 해법은 김정은 신년사와 문재인 대통령의 평창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동안 잠시 배제됐던 중국의 화려한 복귀 신호로 읽힌다. 단계적 해법에 반발하는 한·미의 이탈을 막는 동시에 당 기관지 보도에서 비핵화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는 북한까지 견인하겠다는 복안이다.

5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특사로 러시아를 방문한 왕이(사진 왼쪽)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세르게이 라브로프(오른쪽) 러시아 외교장관과 기자회견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신화]

5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특사로 러시아를 방문한 왕이(사진 왼쪽)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세르게이 라브로프(오른쪽) 러시아 외교장관과 기자회견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신화]

왕 국무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작정한 듯 한반도 해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안정과 중·러 양국의 국가이익은 직결된다”며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전쟁·혼란의 뇌관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 이를 위한 정치적 해법은 세 가지다. 첫째, 비핵화 대방향을 견지한다. 북한을 겨냥한 발언이다. 둘째, 쌍궤병진을 고수한다. 비핵화 후 한반도 미군 철수를 노린 주장이다. 셋째, 단계·동시·일괄타결 추진 방향을 유지한다. 특히 셋째 주장과 관련해 왕 국무위원은 “북·미 사이에는 기본 신뢰가 결핍됐다”며 “평화로 가는 길은 확고한 비핵화 전제 아래 순서에 따라 점진적으로 서로 마주 보며 매 단계 각국이 마땅히 지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평화 과정을 지속 가능하도록 보장할 수 있고, 대화와 담판이 중단되지 않도록 보장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중·러의 공조는 5월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곧 이어질 전망이다. 왕 국무위원은 푸틴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오는 6월 칭다오(靑島)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 참석과 국빈방문을 환영한다는 시진핑 주석의 메시지를 전했다. 푸틴 대통령도 “6월 방중을 기대하며 여러 채널로 시 주석과 밀접한 소통을 유지하겠다”며 “중·러 관계의 더 큰 발전이 양국은 물론 세계에 모두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왕이 국무위원은 미·중 무역 전쟁에 대해 특유의 강성 발언도 이어갔다. 그는 “미국이 보호주의로 저렴하게 차지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계산법”이라며 “미국이 중국에 무역 제재란 큰 몽둥이를 휘두른 것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라고 비난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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