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민주총재 국회연설요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사회는 민주화 도상에 있으나 분단이 만들어낸 민족갈등, 노동쟁의로 나타난 계층갈등, 양대선거를 통해 드러난 지역갈등, 통일의 정치이념과 맞물린 세대갈등이 한꺼번에 분출하는 역사의 총체적 진통기에 있다. 이러한 불안을 치유하는 방법은 시대의 비민주적 유산을 청산하고 진정한 민주시대를 여는 길뿐이다.
5공화국 비리는 통치권과 공권력의 비호아래 저질러졌으므로 통치권 행사의 범죄적 실태를 정확히 밝혀내야 한다.
전두환씨는 스스로 자신과 가족, 친·인척의 부정비리를 밝히고 부정한 재산모두를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
전씨와 그의 가족이 치부한 국내외에 산재해 있는 재산을 국가에 내놓는다면 영세민들의 주택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나라의 민주발전 역사의 전진을 위해 광주문제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한다. 나는 80년5월의 광주항쟁은 그 진실이 밝혀지면 이 사건이 당시 일부군인의 정권탈취 기도에 항거하여 일어선 민주항쟁이라는 일치된 시각이 정립될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나는 이러한 모든 문제를 정치보복적 차원이 아니라 용서와 화해의 차원에서 다룰 것이다.
정치를 전투와 공작의 차원에서 해방시켜 대화와 참여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안기부는 대외·대북한 정보의 수집에만 전념하고 보안사도 정치개입을 중지, 원래의 기능에 전념해야 한다.
또한 군이 정치적 중립을 깰수도 있다는 시대착오적 환상을 갖거나 이런 환상을 정치위협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극단세력이 있다면 이는 군 전체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손상시키는 반역임을 엄숙히 경고한다.
민족의 비원인 통일문제는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으며 통일논의의 민주적 개방을 주장하는 각계각층의 요구가 충만해 있는 것은 긍정적 현상이다.
민주당은 남북학생회담에 대해 각계각층과의 대화를 통해 도출한 합의의 바탕위에서 남북학생교류가 이뤄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민주당의 통일의 3원칙은 민주세력이 주체가 되어 민주적 과정에 의해서, 그리고 통일조국의 체제도 진정한 민주체제여야 한다는 점이다.
현정권은 민주정부만이 조국통일의 주체세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 진정한 민주화의 실천으로 민주통일의 초석을 마련해야 한다.
올림픽이 공산권의 한반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이 땅에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 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이의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이제 외교에 있어서도 냉전문화를 극복할 때이며 남북관계 개선과 외교지평의 확장을 추진키위해 나는 평양·북경·모스크바를 방문할 용의가 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 중진국 수준을 벗어나려고 하는 이때 정치민주화를 위해서도 경제민주화가 시작되어야한다.
노사관계는 민주화·선진화되어야하며 정부도 공평한 중재자 역할에 적극 나서야한다.
경제개발의 이름으로 자행되어온 독점과 특혜, 정경유착과 부채구조는 이제 청산되어야 한다.
독점의 규제와 왜곡된 분배구조 개선을 위해 현행조세제도를 개혁해야하며 특혜와 비리의 온상이 되어온 금융구조도 개편되어야 한다.
관치금융에서 탈피하기 위해 중앙은행의 독립과 현행 배급금융의 자율금융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개발과정에서 소외되었던 중소기업과 농민, 성장과실의 분배에서 차별을 받았던 노동자와 도시 영세민이 조세와 금융, 복지의 혜택에서 고른 기회 균등을 보장받을때 우리의 경제민주화는 의미있는 것이 될 것이다.
정부는 반민주적 관행에 의한 부분석방이 아니라 모든 양심수를 즉각 전면 석방할 것을 다시한번 강력하게 촉구한다.
정치의 요체는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고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주는데 있다.
나는 정국을 안정시키고 의회민주주의를 지기는 길이라면 어떤 희생도, 어떤 노력도 아끼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것이며 정부도 이러한 자세로 민의에 승복하여 참된 민주화의 길을 걸을 것을 촉구한다.
의회의 진정한 권위를 훼손해온 권위주의 통치를 의사당에서 추방하고 밖으로 민족동질성을 회복시켜 통일의 문을 열고 안으로 국민공동체를 형성하여 세대간·지역간·계층간의 불신과 갈등을 해소시키는 새로운 민주국회를 만들어나가야 하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