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승계 '결정적' 단서 잡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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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이천 하이닉스반도체 단지 안에 있는 '현대오토넷'본사. [연합뉴스]

검찰이 현대.기아차 그룹의 비자금 의혹과는 별도의 혐의를 포착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힘으로써 현대차 수사는 새 국면에 들어가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갑작스러운 출국 다음날 나온 검찰의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현대차그룹에 대한 전면적 압박으로 읽히기도 한다. 현대차.글로비스.현대오토넷 등 3개 사 수사를 통해 그룹 차원의 새로운 불법.편법 의혹을 밝혀내겠다는 검찰의 의지로도 해석된다.

◆ 압수수색에서 뭘 발견했나=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현대차.글로비스.현대오토넷 세 회사의 압수물 분석 과정에서 비자금 외에 별건의 단서를 포착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수사 기조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밝힐 정도로 이 단서가 '결정적'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검찰 수사가 급진전한 것은 지난달 26일 압수수색한 자료를 정밀 분석한 결과로 보인다. 내부 제보를 바탕으로 글로비스의 비자금을 캐내는 정도로 기대하며 압수했던 자료가 뜻밖의 성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박영수 대검 중수부장도 "압수 성과가 굉장히 좋았고 (현대차그룹의) 문제점이 포착돼 정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글로비스에서 압수한 금고 속에서 발견된 장부와 양도성 예금증서(CD) 및 수표 등을 분석.추적한 결과 비자금의 윤곽을 상당히 파헤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이 밝힌 '별건'의 단서는 이보다 훨씬 광범위한 자료, 즉 현대차.글로비스.현대오토넷의 재무 관련 문건 등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일부에서는 검찰이 비자금 관련 자료와 함께 정몽구 그룹 회장의 아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후계구도에 관련된 내부 보고서를 확보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 '별건'이 과연 뭘까=검찰은 '별건'의 단서가 수사 대상인 3개 계열사(현대차.글로비스.현대오토넷) 모두와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비자금 건도 아니고, 분식회계 건도 아니라고 밝혔다. 당연히 떠오르는 것은 경영권 승계 관련 건이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있었던 편법.불법의 단서가 나오지 않았겠느냐는 추론이다. 검찰도 비자금과 별도로 포착된 단서가 정의선 사장과 연관이 있느냐는 질문에 "관련 의혹들도 살펴보겠다는 취지"라고 말해 이 부분을 수사할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 같은 정황은 검찰이 현대오토넷 관련 수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더욱 짙어지고 있다. 현대차는 지멘스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난해 7월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하고 있던 현대오토넷을 주당 3050원씩 모두 2371억원에 인수했으나, 이는 당시 현대오토넷 주가(3425원)보다 10% 이상 싼값이어서 헐값 매입 논란을 낳았었다.

또 정의선 사장이 가지고 있던 본텍 지분을 지멘스에 팔 때의 본텍 주당 가격(9만5000원)과, 현대오토넷과 본텍의 합병 때 주당 평가액(23만3553원)이 너무 차이 난다는 것도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현대차가 계열사를 늘려 가는 과정에서 정 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비상장 계열사에 물량을 몰아 줌으로써 부당하게 회사 가치를 키웠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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