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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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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시민단체 활동가와 함께 청와대에 간 적이 있다. 기자 신분증을 꺼내니 출입을 막았다. 그런데 시민단체 사람은 쑥 들어갔다. 일반 시민은 들어가는데 기자는 갈 수 없는 곳이 청와대 비서동이다."(기자협회보, 청와대 출입기자 좌담)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춘추관 기자실을 '춘추사(寺)'라 부른다. 가고 싶은 데는 갈 수 없고, 오라는 곳도 없고…. 하루 종일 절에서 도를 닦는 기분이란다. 과천 정부청사 통합기자실의 별명은 '닭장'이다. 경제부처들은 하루 서너 차례 '모이'를 준다. 기자들은 목을 빼고 브리핑을 기다린다. 보도 자료는 던져주는 대로 써야 탈이 안 난다.

오보는 나쁘다. 때로는 끔찍한 참사를 초래하기도 한다. 1931년 만주의 완바오산(萬寶山) 사건을 다룬 국내 신문의 3단짜리 기사. 만주로 이주한 한국 농민들이 농수로(農水路) 마찰로 중국 농민들에게 얻어맞았다는 것이다. 사실은 멀쩡한 중국 밭에 허가없이 수로를 낸 한국 농민의 잘못이었다. 그러나 이 오보는 화교 사냥을 불렀다. 평양.인천에서 127명의 화교가 영문도 모른 채 살해됐다.('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신문 기사는 인간의 일이다. 오보를 완벽하게 막기는 어렵다. 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88년 55건이던 언론조정신청건수가 부쩍 늘었다. 지난해는 무려 883건. 정부가 오보 사냥을 '실적 평가'에 넣으면서 급증하는 추세다. 요즘 공무원들은 눈에 거슬리는 기사는 해명자료부터 내고 본다. 꼬투리가 잡히면 사설.칼럼까지 물고 늘어진다. 대통령이 직접 신문 만평에 소송을 거는 세상이다. 이러니 기자들은 죽을 맛이다. 언론학 원론은 '최악의 오보는 침묵'이라 가르친다.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

오보라고 다 나쁜 것일까. 다음은 '링컨처럼 서서 처칠처럼 말하라'(제임스 흄스 저)의 일화 한 토막. "19세기 말, 아침 식사를 마친 스웨덴의 한 사업가가 모닝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펼쳤다. 신문에는 자신의 사망기사가 나와 있었다. 명백한 오보였다. 잠시 후 의문의 시체로 발견된 동생을 자기로 착각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자신의 부음 기사를 자세히 읽어 보았다. '죽음의 상인, 무기 판매상 사망!' 그는 분노했다. 그 길로 변호사 사무실로 달려갔다. 당장 유언장을 뜯어고쳤다.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노벨재단을 세우라는 것이었다. 노벨상은 그렇게 탄생했다." 어처구니없는 오보를 인류평화와 세계발전으로 승화시킨 경우다. 한번 참고들 하시길.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