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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대 강조한 시진핑-김정은, 방중 행태는 구시대 그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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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사상 첫 해외 방문으로 기록된 방중 행적은 생전 8차례 방중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의 관행을 여러면에서 답습한 것이다. 엇비슷한 시기에 지도자가 교체된 북ㆍ중 양국이 공통적으로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강조해 왔다. 김 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발표문에도 ‘신시대’란 용어가 몇차례 등장한다. 하지만 7년만에 이뤄진 북ㆍ중 정상 교류는 구시대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아버지가 애용하던 특별열차 편으로 방중했다. 당초 서방 국가인 스위스에서 학생 시절을 보낸 김정은이 해외 방문에 나서면 아버지 김정일과 달리 항공편을 이용할 것이란 예상이 유력했다. 하지만 대를 이어 물려진 특별열차는 7년만에 베이징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발표문 상에는 방중 기간이 ‘3박4일’로 적혀 있으나 실제 베이징에 체류한 시간은 1박2일(만24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평양에서 베이징까지 철도 이동은 20시간 안팎이 소요되는 장거리 여행이다. 이를 받아들이는 중국 입장에서는 이동 경로 전역에서의 경호와 기존 철도 운행 조정 등 번거롭고 부담스런 일이다. 하지만 중국은 특별열차 도착 시간 전후로 단둥(丹東)역 주변에 가림막을 설치하고 평소 승객으로 붐비는 베이징 역사를 통제한 채 기차 발착 시간표를 변경하는 등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25일부터 28일까지 중국을 비공개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가졌다. 김정은은 부인 이설주와 함께 중국을 방문했으며, 북중정상회담과 연회 등 행사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25일부터 28일까지 중국을 비공개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가졌다. 김정은은 부인 이설주와 함께 중국을 방문했으며, 북중정상회담과 연회 등 행사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북ㆍ중 양국의 철저한 비밀주의 역시 김정일 시대와 달라진 게 없다. 중국 당국은 특별열차에 누가 탔는지는 물론이고 북한 대표단이 방중했다는 사실 조차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 시간에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아는 바 없다”로 일관했다. 그나마 27일 특별열차가 베이징을 떠날 무렵 “밝힐 소식이 있으면 적절한 때 밝히겠다”거나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 점이 모종의 암시를 주었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의 베이징 체류 기간 내내 외신 기자들은 공안 당국의 삼엄한 통제 속에서 북한 대표단 차량과 숨바꼭질을 벌여야 했다. 이번에도 김정일 시대의 관행대로 방중 사실에 대한 공식 발표는 김 위원장 일행의 열차가 북ㆍ중 국경을 넘어 북한 땅으로 도착한 직후인 28일 오전에 나왔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일행의 차량 행렬이 27일 중국 공안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은 28일 김정은이 평양으로 귀환한 직후 김정은의 방중 정상회담 사실을 공개했다. [EPA=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일행의 차량 행렬이 27일 중국 공안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은 28일 김정은이 평양으로 귀환한 직후 김정은의 방중 정상회담 사실을 공개했다. [EPA=연합뉴스]

중국이 제공한 최고 수준의 의전과 경비ㆍ경호도 김정일 시대와 큰 차이가 없었다. 과거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때에는 베이징 중심가 도로인 창안제(長安街)를 전면통제한 것은 물론 연도의 건물에서 창문으로 도로를 내려보는 것까지 금지시켰다. 이번에도 북한 대표단 일행의 동선 주변에는 엄격한 통제와 삼엄한 경비가 재연됐다. 더 추가된 것은 인터넷 검색어에서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게시물이 삭제된 것은 물론 아예 북한의 국호인 ‘조선’을 아예 검색어에서 금지 단어로 지정한 것이다. 그 때문에 근세 조선 왕조에 대한 역사 자료 검색도 차단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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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구한 베이징의 대학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이 당당하고 공개적인 모습으로 이뤄지면 북한이 표방하는 ‘정상 국가’로서의 이미지와 정상적 국가간 관계로서의 북ㆍ중 관계 이미지, 김정은 개인의 아버지 김정일과 다른 개방된 지도자로서의 이미지 등 여러가지의 상징적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면서 “왜 굳이 과거와 다름없는 모습의 방중을 택했는지 의아하다”고 평가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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