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강찬호의 시시각각

대통령, 천안함 유족의 절규 외면 말라

중앙일보

입력 2018.03.23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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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부터 베트남과 아랍에미리트(UAE) 순방길에 올랐다. 국익을 위한 적절한 행보다. 그러나 시점이 문제다. 굳이 천안함 폭침과 제2 연평해전, 연평도 포격에 희생된 영령들을 기리는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 전날에 가야 했을까. 더욱이 문 대통령은 천안함 유족과 생존 장병들에게 적지 않은 빚을 졌다. 천안함 폭침 지휘자인 김영철을 초청해 특급호텔에 재우며 VIP 대접을 한 게 한 달 전이다. 분노한 유족들이 청와대에 항의 서한을 전달했지만 대통령은 한 달이 되도록 묵묵부답이다.

순방 외교 좋지만 추모식 전날 떠나 유감
북한 소행 확실히 인정하며 유족 보듬길

천안함 예비역 전우회 대표인 전준영씨(당시 병장)를 만났다. “그래도 1년에 한 번뿐인 기념식엔 오시겠지 했던 대통령이 끝내 안 오신다는 걸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 너무 속상했다. (유족들을) 처참하게 짓밟는다는 생각에 잠을 못 잤다. 김영철 방남 때도 그랬다. 숨진 전우들이 휴지 조각같이 버려진 것 같아 현충원에 다녀왔다.”

청와대는 순방 탓에 기념식 못 온다는 건데.
“일정을 하루만 늦춰도 되지 않나. 피하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북한 눈치 보는 탓도 있을 거다. 5·18, 세월호 유족들에겐 달려가서 안아주는 대통령이 유독 저희들에겐 그러지 않는다. 대통령 되시기 전부터 그랬다. 추모식에 몇 번 참석하셨지만 우리에게 직접 다가와 위로해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통령도 천안함은 북 소행이라 했는데.
“(톤이 높아지며)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한 적이 없다. 폭침 뒤 2, 3년은 지난 뒤에 어쩔 수 없는 분위기 탓에 했을 뿐이다. 중도보수 표를 얻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거다. 대선 토론 때 보니 문재인 후보는 천안함 얘기 나오면 피하려고만 하더라. 저희도 사람인지라 다 느껴진다. 천안함 거론할 때 눈빛이 세월호 때와 아주 다르시더라. 단식투쟁하고 유족 손도 잡아주던 분이 우리 손을 잡아준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상하게 민주당 의원들이 전부 그렇다.”
남북대화에 천안함이 걸림돌로 여겨져서 그런 것 아닐까.
“과연 그런지는 짚고 넘어갈 문제다. 대화도 좋지만 대통령이라면 천안함의 본질을 정의해 줘야 한다. ‘북한 소행이 맞고 평양의 사과를 받겠다’는 한 말씀만 해주면 우리를 진정 생각해 주는 대통령으로 여길 것이다.”
김영철 방남에 대해선.
“유족들은 대승적 차원에서 이해해 줄 준비가 돼 있다. 그래도 예의란 게 있어야 한다. 사전에 김영철이 온다고 한마디만 해줬어도 됐을 텐데 그런 것 하나 없었다. 정부에 부탁한다. 천안함 꺼내면 보수, 세월호 꺼내면 진보라고 편 가르지 말고 위로만 해 달라.”

대통령 대신 유족들을 만난 이가 피우진 보훈처장이다. 그는 “내가 (대통령) 대신 위로해 드리면 안 되겠나”고 했다가 유족들로부터 “우린 문 대통령을 만나야 할 이유가 있다”는 핀잔만 들었다. 유족회 회장인 이성우씨를 만났다.

문 대통령을 만나야 할 이유는.
“천안함 유족이라고 하면 ‘북한 소행 맞느냐’는 질문만 받고 살았다. 그래서 자식을 나라에 바쳤으면서도 유족이란 얘기도 떳떳이 못 하고 죽은 듯 살아야 했다. 그래선지 이 정부는 우릴 그림자로 취급하더라. 있어도 없는 존재로 말이다. 유족들이 이 정부에 받은 상처가 너무 크다. 그래서 앞으론 떳떳하게 목소리를 내려 한다.”
문 대통령이 어떻게 하면 되나.
“우리를 만나 ‘천안함은 북한 소행’이라고 분명하게 얘기해 주면 된다. 그분은 그 얘기를 에둘러서만 하더라. 알아서 들으란 뜻인데, 그래선 남남갈등이 종식될 수 없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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